작은 약국 하나 때문에 연 13만 섬 주민 이용하는 병원선 중단?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통영 사량면 ‘의약분업 예외’ 취소
보건지소 인근에 개업한 약국 탓
도 “병원선 역할 미미” 순회 중단
“도서지역 예외 조항 만들어야”

병원선 경남511호. 경남도 내 7개 시군, 40개 섬, 49개 마을주민 2500여 명에게 매월 1회 정기순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남도 제공 병원선 경남511호. 경남도 내 7개 시군, 40개 섬, 49개 마을주민 2500여 명에게 매월 1회 정기순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남도 제공

“약국 생겨서 좋아했는데, 이 때문에 병원선이 못 온다네요. 다시 문 닫으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경남 통영시 사량도를 오가던 병원선 운영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본섬에 민간 약국이 들어서면서 ‘의약분업 예외 지역’ 지정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애초 이런 부작용을 몰랐던 주민들은 난데없는 병원선 중단 예고에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31일 경남도에 따르면 도는 9월부터 행정구역상 통영시 사량면에 속한 11개 섬마을과 부속 섬인 수우도에 대해 병원선 ‘경남 511호’ 순회 진료를 중단할 예정이다. 지난 5월 26일 자로 사량면이 의약분업 적용 지역으로 묶인 탓이다.

의약분업 예외 지역은 지난 2000년 관련 제도 시행 이후에도 약사가 의사 처방전 없이도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가한 곳이다.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없는 섬이나 의료기관과 약국 간 실거리가 1.5km 이상 떨어진 경우, 지정된다. 덕분에 사량도 주민들은 보건지소나 병원선에서 진료와 약 조제를 동시에 받을 수 있었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진료비와 약제비도 면제됐다.

그런데 지난 2월 보건지소 500m 인근에 약국이 개업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불거졌다. 통영시가 예외 지역 지정을 취소하자 도는 병원선 순회 진료 중단을 예고했다. 단순 진료 외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다.

경남도 병원선은 1973년 취항 이후 50년간 의료취약 도서 지역을 돌며 섬 주민 건강지킴이 역할을 해 왔다. 2003년 7월부턴 511호가 ‘보건 1호’ 바통을 이어 통영·창원·사천·거제·고성·남해·하동 등 도내 7개 시군, 51개 섬마을 주민 3000여 명을 대상으로 매월 1회 정기순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병원선에는 공중보건의사 4명에 간호사 3명 등 직원 15명이 승선해 내과, 치과, 한의과를 본다. 작년엔 165일간 9516km를 운항하며 내과 4만 5146명, 치과 1만 1819명, 한의과 2403명 등 연인원 13만 6146명을 진료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사량도 등 통영 관내 섬 주민이다.

섬마을 주민들이 병원서 순회 진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경남도 제공 섬마을 주민들이 병원서 순회 진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경남도 제공

주민 대부분이 고령인 데다, 가뜩이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섬 생활에 없어선 안 될 필수 의료서비스이기에 당장 우려와 함께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 사량면은 6월 말 기준 전체 인구 1359명 중 절반이 넘는 694명이 65세 이상이다. 마을버스 배차 간격도 2시간이라 면 소재지 외곽에 사는 주민이 보건지소에 다녀오려면 최소 4시간이 걸린다. 특히 수우도는 접근성이 더 떨어져 병원에 가려면 사천이나 진주까지 원정을 떠나야 해 병원선 의존도가 높았다.

한 주민은 “비록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우리에겐 병원선이 자식만큼 반갑고 힘이 돼 손꼽아 기다린다”면서 “무엇보다 수우도는 병원선이 사실상 유일한 의료서비스라 이마저 중단되면 불편이 너무 커진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열악한 도서 지역 현실을 고려해 약사법에 예외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영시의회 김혜경 의원은 “병원선까지 중단하는 것은 섬 주민 의료 혜택을 줄이는 것으로 행정의 폭넓은 해석과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섬진흥원 등 여러 곳에 호소하며 해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관계 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통영시보건소 관계자는 “지역민 불편 해소를 위해 상급 기관에 문의했는데, 아직 뚜렷한 답변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병원선이 가더라도 약 조제는 물론 처방전도 줄 수 없게 돼 사실상 병원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약국을 연 약사도 해법을 찾고 있지만 법 규정에 막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