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수평선이 사라지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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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화평론가

부산에서 산 지도 거의 20년이 되어 간다. 20년을 살고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수평선이었다. 부산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바다와 수평선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고개를 들면 바다가 보였고, 그 바다를 끝까지 훑어가면 수평선이 보였다. 낮에도 보였지만, 밤에 보는 수평선은 더욱 아름다웠다. 때로는 외롭기도 했지만, 수평선이 보이는 경관에서는 감수해야 할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서의 거처는 비교적 바다가 보이는 곳에 정하고자 했다. 멀리서나마 바다를 볼 수 있고, 그 평온함과 웅대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 주변에서 말리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빨래가 마르지 않고, 태풍이 올 때 위험하고,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빨리 부식된다는 충고였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그때마다 바다에 갔다 오면 되지, 무엇 때문에 바다 근처에 살면서 그 어려움을 감수하려느냐고 되묻는 이도 적지 않았다.

바다·수평선이 매력인 도시

빌딩숲이 수평선 잠식해가

"바다, 공터, 조망 공존해야"

2005년 부산에 올 때, 서울에서는 한강이 보이는 조망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었다. 부동산 가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영구 조망으로 남아서 눈앞에 무언가가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곳은 한강 강가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강마저 메우고 그 위에 무언가를 지을 수 있었다면 한강 역시 남아 있지 않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에, 그곳은 트인 전망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부산에 오자 탁 트인 전망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부산은 인구 400만에 육박하는 대도시이면서도, 곳곳에 영구 조망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그 조망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영구 조망은 확실히 줄었다. 도시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건축물이 늘었고, 대부분이 아파트인 이 건축물들은 수평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는 바다가 오션뷰 아파트에만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상황이 이러한 데도 여전히 수평선을 쪼개는 일을, 여전히 그리고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과거에 학교의 절반이 바다에 면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늘어난 아파트와 건물에 둘러싸여 이제는 육지의 섬처럼 변해 있다. 어디까지가 바다였는지는 드문드문 남은 해송 잔해로만 확인될 뿐, 주위는 모두 빌딩 숲으로 변해 버린 후였다. 그런데도 혹여 남은 땅이 있다면 여전히 건물을 짓는 일이 우선이고, 바다나 공터 혹은 자연은 밀어내어야 할 무엇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니 바다인들 남아날 리 없었다.

우리는 지금 단순히 수평선을 없애고, 바다가 풍경을 없애고, 익숙했던 과거의 정취를 없애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주체못할 욕심으로 멈추어야 할 것을 멈추지 못하고 있고, 침범하지 말아야 할 곳을 침범하고 있다. 바다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공터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곳을 침범하고 그곳을 파괴하는 행위가 용납될 수는 없다. 그것은 수평선이 사라지고, 어쩌면 바다마저 위협받는 미래의 시점에서는 분명 재앙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자, 더 높은 전망 선호도를 보이는 곳을 골라, 더 좋은 오션뷰를 갖춘 부지를 물색하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건설사와 투자가가 늘어나고 있는 줄 안다.

바다를 그리고 자연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곧 그들은 생각을 바꿔 먹어야 했다. 자연은 무한하지 않았고, 인간은 전능하지 않았다. 자연이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기 이전에 인간은 인간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누구보다 인간은 함께 있어야 하는 존재였고, 이를 위해서는 바다도, 공터도, 조망도 이 세상에 함께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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