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악당의 색’… 두 번째 극 ‘블루’는 영화 같은 공연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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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 ‘블루’ ‘레드’ 3부작 시리즈
작년 ‘퍼플’ 이어 최근 ‘블루’ 공개
평가회 열고 추후 제작에 반영
연말 ‘레드’에선 더 큰 진화 기대

극단 아이컨택 '악당의 색:블루' 공연 장면. 아이컨택 제공 극단 아이컨택 '악당의 색:블루' 공연 장면. 아이컨택 제공

부산에서 활동 중인 청년 극단이 야심 차게 선보이는 시리즈인 ‘악당의 색’이 두 번째 작품 ‘악당의 색:블루’를 공개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지역 연극 전문가들은 공연이 끝난 뒤 창작자와 함께 모여 합평회를 여는 등 청년 극단의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극단 아이컨택은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부산 동구 일터소극장에서 ‘악당의 색: 블루’ 공연을 진행했다. ‘악당의 색: 블루’는 ‘악당의 색: 퍼플’, ‘악당의 색: 레드’와 함께 제작되는 3부작 시리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이 점점 커져 한 인간을 악당으로 타락시키는 과정을 그려냈다. ‘악당의 색’ 3부작은 부산에서 유일하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 3개년 지원사업’(2022)에 선정돼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아이컨택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연극(퍼플), 신체극(블루), 뮤지컬(레드) 등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해 7월 ‘악당의 색: 퍼플’을 공개한 데 이어 올 연말에는 ‘악당의 색: 레드’를 무대에 올려 시리즈를 완성한다. 시리즈가 제작된 이후에는 시리즈 전 편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도 구상 중이다.

최근 관객에게 공개된 ‘악당의 색: 블루’는 공연을 보러 가서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조명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연출이 돋보였다. 캄캄한 밤하늘에 번개가 치듯 7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그림자극의 형식을 차용한 장면, 푸른색과 붉은색의 조명을 적절히 활용해 ‘색(色)’을 소재로 한 공연이라는 점을 강조한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소극장 안을 가득 채운 배우들의 에너지도 인상적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뛰고 구르고 춤을 추며 말 그대로 몸을 던진다. 절제된 몸동작과 환상의 호흡이 필요한 몸짓을 수행하면서 곳곳에 배치된 웃음 포인트도 맛깔나게 살려낸다. 연출가의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진 무대와 배우들의 땀과 노력이 만나 공연 시간 1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극단 아이컨택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문가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등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아이컨택 양승민 대표는 세명대 연기예술학과 김선권 교수를 찾아가 신체극에 대한 자문을 요청했다. 김 교수는 직접 ‘무브먼트 디렉터’를 맡아 동선, 안무 등을 지도했다.

지난 3일에는 공연이 끝난 후 부산에서 활동 중인 연극 전문가들이 모여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허은 전 경성대(연극영화학부) 교수, 김문홍 연극평론가, 이기호 경성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등 전문가 3인은 양 대표의 초청에 화답해 시리즈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연극 비평 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부산의 특성상, 전문가와 극단이 직접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쉽게 보지 못하는 풍경이다. 지역 연극의 성장을 위해 전문가들이 이른바 ‘원팀’으로 나선 셈이다.

전문가들은 ‘악당의 색: 블루’가 지닌 가능성과 공연 준비를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는 서사적 연결고리가 미흡한 점 등을 언급했다. 허 전 교수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하는데 폭력의 현상을 보여줄 것인지,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을 파고들 것인지에 대해 더 고민했어야 했다”며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시도한다는 건 기존 표현법이 유의미하지 않다고 느낄 때 하는 것인데 왜 하필 신체극이라는 장르를 선택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무대에서 배우들이 어떤 행동을 하면 관객들이 그 행동의 이유를 납득해야 한다”며 “지금은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돼 이야기 전체를 꿰는 연결고리를 조금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음악을 포함한 무대 효과 등이 잘 만들어져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폭력의 현상보다는 악의 근원적인 부분에 대해 접근하고 시각적인 자극을 좀 더 추가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양 대표는 “공연을 준비할 때 관객의 입장에서 본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지만 부산에서는 그런 기회가 많이 없어 오늘 이 자리가 방향성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곧 악당의 색: 레드도 제작에 들어가는 만큼 전문가와 함께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극단 아이컨택 '악당의 색:블루' 공연 장면. 아이컨택 제공 극단 아이컨택 '악당의 색:블루' 공연 장면. 아이컨택 제공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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