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피'를 '서'로 나누는 피서를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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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규 부산혈액원장

최근 한 직원이 “오늘 날씨도 어항이네요”라는 말을 했다. 어항은 무엇의 줄임말일까, 아니면 유행하는 신조어일까 고민했는데 알고 보니 높은 습도에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어항이라고 표현한단다. 기발한 비유에 웃음이 나다가, 문밖을 나서니 정말 세상이 ‘어항’ 같다.

푹푹 찌는 날씨에 몸이 축 처지는 와중에, 무더위와 방학으로 헌혈의 집을 찾는 발걸음 또한 줄어들었다. 매년 여름은 더위와 방학으로 헌혈자가 감소하지만, 올여름은 긴 장마와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난히 헌혈의 집이 한산한 모습이다. 학교의 방학과 기업의 휴가철에는 헌혈 버스를 통한 단체 헌혈 또한 어렵다. 혹서기가 한 달은 지속될 텐데, 한 달여간 ‘헌혈 보릿고개’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마음이 무겁다.

지난 2월부터 지속된 전공의 사직 사태로 인해 대형 병원의 환자 수와 수술 건수가 감소했다고는 하나, 최근 부산의 의료기관 혈액 공급량은 점차 예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비수술적 치료에도 수혈은 필요하고,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수도권의 환자들은 지역 거점 대학병원으로, 상급종합병원의 환자들은 종합병원과 병·의원으로 분산돼 진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가 얽혀있는 요즘과 같은 시기일수록 혈액 공급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헌혈자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7월 부산 시내 헌혈의 집을 찾은 헌혈자는 전년 대비 6%가량 감소해, 장마 피해가 컸던 다른 지역의 헌혈자 감소가 미미했던 것에 비해 두드러졌다. 또한, 수혈용 혈액으로 사용되는 전혈과 혈소판 헌혈자 수는 10% 이상 감소해, 8월부터는 안정적 혈액 공급에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5월 9.0일분을 넘어섰던 혈액 재고량은 8월 들어 6.0일분까지 떨어졌고, 혈액 재고 감소는 점차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혈액 부족 상황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요즘, 시민과 기업, 지자체의 적극적 헌혈 참여와 협조가 절실하다. 부산진구와 영도구, 기장군(정관읍), 수영구는 이번 달 단체 헌혈에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영도구는 관내 주민등록을 둔 다회 헌혈자를 대상으로 시설물 이용 시 감면 혜택과 감사 선물을 지급하는 헌혈자 예우사업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구·군별로 제정 시행하고 있는 ‘헌혈 권장에 관한 조례’에 따라, ‘헌혈을 통해 원활한 혈액 수급이 이뤄져 구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나아가 인류애를 실천하며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최일선 현장에서 혈액 감소를 체감하는 의료기관들도 단체헌혈에 나선다. 부산보훈병원을 포함해 4개 병원이 수혈용 혈액 확보를 위해 단체 헌혈을 계획하고 있다. 혈액이 부족할 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고생하는 의료진들의 동참과 솔선수범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헌혈 참여다. 부산은 하루 700명 정도가 헌혈에 참여해야 안정적인 혈액 확보가 가능하나, 최근 하루 헌혈자 수는 560명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헌혈의 집으로 피서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부산혈액원에서는 헌혈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헌혈 환경 조성을 위해 시설 개선과 더불어 다양한 헌혈자 예우 프로모션을 실시하고 있다. 더위를 피하는 피서, ‘피’를 ‘서’로 나누는 피서를 여러분께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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