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켓 신화' 구영배의 몰락… 큐텐그룹 해체 수순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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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들 모기업과 결별 준비
큐텐에 미수금 반환 내용증명
티몬·위메프, 자율 구조조정
채권자만 11만 명, 갈길 멀어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지난 1일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협조를 위해 검찰 관계자들과 함께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지난 1일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협조를 위해 검찰 관계자들과 함께 자택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구영배 대표의 큐텐그룹 계열사가 각자 살 길을 찾아 나서면서 사실상 와해 수순으로 가고 있다. 티몬·위메프(티메프)의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의 여파로 구 대표의 계열사 장악력이 크게 약해지면서, 계열사들은 독자 매각 등 모기업과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인터파크커머스는 최근 큐텐 측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 등을 돌려받기 위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인터파크커머스는 큐텐이 지난해 3월 지분 교환을 통해 인수한 이커머스 업체로 인터파크쇼핑과 도서, AK몰 등을 운영한다. 인터파크커머스가 큐텐과 기술개발 계열사 큐텐테크놀러지, 큐브네트워크 등에 물린 자금은 약 650억 원대로 알려졌다. 대부분 판매대금 미수금과 대여금이다.

자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모회사에 이처럼 미수금이나 대여금에 대해 법적 다툼을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일은 흔치 않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인터파크커머스가 큐텐과 완전한 결별 수순으로 가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김동식 인터파크커머스 대표는 “큐텐의 지원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며 “독자적인 매각 작업을 추진해 독립경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티몬도 대형 투자사와 투자 유치, 매각 논의를 시작했고, 위메프도 개별적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모기업 큐텐의 지원만 기다리다가 다 함께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구 대표가 이른바 ‘그룹 총수’로서 신뢰를 보여주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구 대표는 이번 사태가 터지고 상황이 점점 악화하는데도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

큐텐의 싱가포르 기반 글로벌 물류 자회사인 큐익스프레스는 지난달 26일 구 대표가 최고경영자(CEO)직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마크 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임명했다. 티몬과 위메프 미정산 사태의 후폭풍이 그룹의 존립 기반을 흔들 만큼 거세지자 ‘손절’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지난 2일 서울회생법원은 티몬·위메프가 신청한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ARS는 회생절차 개시 결정에 앞서 채무자와 채권자들 사이에 자율적인 구조조정 협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법원이 지원하는 제도다.

법원이 ARS를 가동했지만 실제 합의까지는 갈 길이 멀다. 채권자 수가 11만 명에 달하고,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협의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더군다나 구심점을 잃고 공중분해가 진행 중인 큐텐그룹의 현 상황이 티몬과 위메프의 회생 절차 또는 자율 구조조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큐텐이 중심을 잡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 자회사 분리매각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기보다 자회사가 ‘각자도생’에 매진하는 현 상황이 시장이나 채권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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