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광부·간호사보다 17배 많은 선원들 알려야” [바다 (人)스타]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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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선원노인복지협회장 김필재

1970년대 국내외 선원 17만 명
“산업화 시절 국가 발전에 기여”
5만 퇴직 선원 절반이 부산 거주

전국선원노인복지협회 김필재 회장이 <부산일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전국선원노인복지협회 김필재 회장이 <부산일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1960~1970년대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가 ‘한강의 기적’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먼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외화를 벌어들인 선원들의 이야기는 비교적 낯설다. 지난달 전국선원노인복지협회 신임 회장이 된 김필재(76) 회장은 “1960~1970년대 국내외 선원은 17만 4198명으로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나 광부 약 1만 명보다 17배나 많았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민 소득 3만 5000달러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됐다”고 강조했다.

전국선원노인복지협회는 퇴직한 선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2013년에 설립됐다. 협회에 소속된 공식 회원은 344명이지만, 퇴직한 선원이라면 회원 여부를 가리지 않고 복지 사업을 펼친다. 김 회장은 “입원한 선원에게 일정 부분 병원비를 지원하거나, 돌아가신 분들께는 조의금을 전달한다. 또한 퇴직 선원께서 협회 방문 시 식사나 음료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전국에 퇴직 선원이 약 5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며 이중 절반가량이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 사무실이 부산 중구에 위치한 이유다.

김 회장은 선원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한 부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 당시 파견된 우리나라 군인들은 월평균 30~50달러의 외화를 벌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외국 선박에 승선한 국내 선원들의 급료는 2등 항해사 기준 월평균 500달러에 달했다”면서 “이처럼 우수하고 근면한 우리 선원들이 가족과 생이별하며 벌어들인 외화는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지만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고 전했다.

협회에 따르면 1960년대 국내외 취업 선원 수는 약 7759명이었고 해외 취업 선원이 벌어들인 외화는 1700만 달러(약 47억 원)였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선원 수는 17만 4198명으로 대폭 늘었고 외화 수입 또한 약 5억 5000만 달러(약 2365억 원)로 급증했다. 1965년 한국의 국민 소득이 약 60~100달러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외화의 가치는 현재보다 훨씬 높았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김 회장 자신도 수십 년간 선원 생활을 한 베테랑이다. 그는 1968년 원양어선에서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뉴질랜드에서 북쪽으로 약 2900km 떨어진 태평양 사모아 지역까지 나가 통신 업무를 맡았다. 이후 한진해운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며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의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선원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상당한 만큼 퇴직한 선원들의 복지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그는 “현재도 230명이 넘는 우리나라의 선장 출신 도선사들은 밤낮으로 국내 항구에서 외국 선박의 입출항을 도우며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면서 “협회도 퇴직 선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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