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후배들, 주인의식 갖고 영세 업체 권익 보호에 더 나서길” 한종석 전 전문건설협회 부산 사무처장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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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업계 생활 지난달 31일 정년 퇴임
회원사 300개에서 올해 2400여개 확대
부산시 하도급관리팀 신설 등 주도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 활성화 공헌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온 33년이었다. 섬유 공장에서 나와 스물아홉의 나이에 입사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마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그래도 밤낮 없이 일만 보고 살았다. 주 6일제 근무가 몸에 배어 주말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지역 건설업계 종사자는 물론이고 시청이나 구청의 공무원, 신문·방송 기자까지 그를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다.

대한전문건설협회 부산시회 한종석(60) 전 사무처장의 이야기다. 한 처장은 지난달 31일 자로 정년 퇴임하고 자리를 내려놨다. 퇴임 후 계획을 묻자 그는 ‘힐링 타임’부터 가지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문건설협회는 종합건설사 등 원청업체로부터 휘둘리기 십상인 하도급 업체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다. 한 처장이 입사한 1992년에는 전문건설업에 대한 인식이 한참 부족하던 때였다. ‘오야지’나 ‘십장’으로 불리던 건설현장의 반장들이 원청으로부터 돈을 받아 제멋대로 나눠주곤 했다.

부당한 이유로 하도급에서 배제되거나 제때 제값을 받지 못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한 처장을 비롯한 전문건설협회 직원들은 이들을 법의 공정한 테두리 안으로 밀어넣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300개에 불과하던 부산전문건설협회 회원사는 올해 2400여 개로 늘어났다.

한 처장은 30여 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가장 뜻깊었던 일로 2016년 〈부산일보〉와 함께 일궈냈던 부산시 하도급관리팀 신설을 꼽았다. 한 처장은 “2006년 조례 제정을 통해 부산 공사 현장의 부산 하도급 업체 비율을 70% 이상 확보하라고 권장했지만 전담팀이 없어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다”며 “이로 인해 매년 1조 원이 넘는 돈이 부산 밖으로 유출되고 있는데, 손 놓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설문조사 등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뜻을 모아 이곳저곳에 목소리를 내봤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며 “감사하게도 〈부산일보〉가 협회의 뜻에 공감을 했고, 여러 차례 날 선 보도로 지역 업계 현안을 실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부산지역에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를 활성화하는 데도 한 처장의 공이 컸다. 하도급 업체가 원도급 입찰에 종합건설업체와 함께 공동으로 참여해 불공정 거래를 막는 제도다. 한 처장은 “하도급에 적정 공사비를 지급해서 건설업의 오래된 병폐인 부실시공을 막았던 제도”라며 “시청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제도 활성화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또 설득했다.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부산이 17개 시도 중 가장 좋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협회의 업무는 일선 업체들의 권익 보호와 지원에 주안점을 둔다. 성과를 낸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주어지거나 대외적으로 도드라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한 처장은 더더욱 후배들에게 ‘주인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처장은 “협회 업무라는 게 주어진 일만 하면 일이 적지만, 하겠다고 덤벼들면 끝이 없기도 하다”며 “협회가 도움을 줘야 하는 영세 업체가 지역에는 정말 많다. 협회 직원들이 나서 이들을 도울 수 있으려면, 직원들을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협회 분위기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임식을 치른 날 저녁, 한 처장의 아내는 그에게 “당신은 두루 인정받는, 존경할 만한 ‘인생 선배’다. 하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다소 부족했다”며 미뤄덨던 얘기를 털어놨다고 한다. 한 처장은 “직장과 사회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지만, 필요할 때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가족에게는 미안함이 크다”며 “당분간은 가족에게 집중하며 그간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데 주력하겠다”고 전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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