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바늘구멍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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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진화 과정을 통해 필요에 의해 몸에 털이 거의 없어진 인류. 원시 인류는 동물에게서 얻은 가죽을 걸치고 덮는 방법으로 체온을 유지하고 피부를 보호했다. 인류가 처음 옷을 입기 시작한 지는 17만 년이나 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시카고대 이언 길리건 고고학 교수 연구진은 지난 6월 말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인간에 기생한 이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머릿니가 몸니로 분화한 시기는 17만 년 전인데, 이 무렵 체모 역할을 한 입을 것이 생겼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가죽옷 덕분에 춥고 험준한 극지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여기엔 구멍 뚫린 바늘의 힘이 컸다. 이전에는 동물의 뼈나 이빨로 만든 송곳으로 가죽에 구멍을 낸 뒤 힘줄로 된 실을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실을 직접 꿰는 바늘구멍의 기능이 발명돼 훨씬 튼튼하고 정교한 의류를 깁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게다. 우리나라에선 생선 뼈 윗부분에 구멍을 낸 신석기 시대 뼈바늘이 강원도 영월에서 출토된 바 있다.

생필품이 된 바늘은 청동기·철기 시대를 거치며 갈수록 정밀하게 제작됐다. 자연스레 바늘구멍도 매우 작아졌다. 이에 따라 바늘구멍이란 단어는 아주 작은 구멍과 좁은 관문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바늘구멍으로 하늘 보기’는 조그만 구멍으로 드넓은 하늘을 본다는 뜻으로, 전체를 보지 못한 좁은 소견을 비꼰 속담이다. ‘바늘구멍으로 코끼리를 몰라 한다’는 작은 구멍으로 몸집이 큰 코끼리를 몰라고 한다는 의미로, 전혀 가능성 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도 기독교 성경에 나온다.

지난 3일 파리 올림픽 여자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임시현 선수가 시상대에서 왼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왼눈으로 들여다보는 이색 세리머니를 펼쳐 화제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에 이은 올림픽 3관왕 등극이 바늘구멍을 통과한 셈이어서 그랬단다. 공정 경쟁을 철저히 준수해 ‘올림픽 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 뽑히기가 더 어렵다’는 양궁이니 그럴 만하다. 청년의 취업문 역시 경기침체로 바늘구멍만큼 좁기만 하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일부에서 ‘부모 찬스’가 먹히는 데다 비정규직이 많은 탓에 구직을 포기하고 노는 젊은 층이 급증 추세다. 좋은 일자리가 넘쳐나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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