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아름다운 사람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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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지난달 별세 김민기 학전 대표
‘음지’의 삶 ‘뒷것’의 생애 통해
이 땅의 장삼이사들 보듬어내

마지막 가는 길 조문객들 발길
고인의 깊은 내면에 존경 헌사
시대의 가인, 영원의 가인으로

‘내 이름을 딴 추모 공연이나 행사, 사업을 원치 않는다.’ 지난달 21일 별세한 김민기 학전 대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스스로를 낮추었다. 저 유언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해 온 일생의 지론과 온전히 겹친다. ‘(자신의) 발자취가 있다면 그저 시대의 기록 정도이길 바란다’는 뜻도 남겼다. 포용과 달관, 무욕의 수행자를 닮은 삶. 영혼의 깊은 화인 자국을 우리에게 남긴 채 그는 70여 년 인생을 마감했다.

그것을 가로지르는 열쇳말 두 개를 꼽는다면 ‘음악’과 ‘사람’일 것이다. 전자는 타의에 의해 ‘음지’의 삶을 살았던 생의 전반부와 관련되고, 후자는 학전 대표로 ‘뒷것’(뒤에서 남 돕는 일을 조용히 수행하는 사람)의 삶에 매진한 인생 후반부와 연관된다. 금지곡 가수로 낙인찍힌 음지에서의 삶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불행한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저항 가수의 비조’라는 칭호가 있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격노나 적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래 속에 세상을 바꾸려는 거대한 계획, 가열 찬 포부가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 낮은 땅 후미진 구석에서 숨죽이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쓰다듬었을 뿐이다. 아니, 그 자신이 박해받고 고통받는 밑바닥 존재였다.

‘아침이슬’을 비롯한 포크 음악의 성취는 짧은 지면에서 거론할 주제가 못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득이 한 가지를 들라면 ‘노랫말과 선율의 빈틈없는 직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직접 쓴 노랫말은 삶의 경험을 시적인 경지로 승화시켜 언어와 현실을 적실하게 엮는다. 여기에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완벽하게 조응한다. 낮게 읊조리는데도 청자의 가슴을 크게 울리는 이유다. 이게 김민기 음악의 탁월성이다.

1970년대까지도 국내 가요는 일본식 문화의 여파인 트로트와 미8군 출신의 스탠더드 팝이 주류였다. 이제 막 유입된 통기타 음악도 외국곡을 번안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김민기의 포크 음악은 서구의 음악 문법에서 벗어나 한국 대중음악의 ‘자아’를 일깨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직접 만들고 부르는 예술로서의 가요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모색한 거의 최초의 사례라 할 만하다.

이제 ‘사람’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다. 정권의 박해 속에 지하를 전전할 때도, 먹고 살기 위해 공장과 탄광에서 일할 때도, 머슴살이로 소작농으로 농사일을 할 때도,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으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기지촌 여성, 광부, 아이들과 부대끼고 어울렸다. 그 역시 투사나 영웅이 아니라 세상 속의 보통 사람이었단 뜻이다. 이는 곧 음악의 원천이기도 했다. 열일곱 나이에 죽은 친구의 부모에게 소식을 알리려고 기차 속에서 만든 ‘친구’, 군 복무 중에 정년퇴직 앞둔 선임하사의 푸념을 듣고 즉석에서 지은 ‘늙은 군인의 노래’,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든 ‘상록수’ 등등이 그렇다.

시대가 바뀌고 곡절 끝에 양지로 나온 그는 극단 학전을 세운다. 가수·작곡가에서 뮤지컬 연출가·소극장 경영인으로의 변신이었다. 수많은 공연과 무대를 기획하고 가수·배우들을 길러내는 데 탁월한 안목을 지닌 그였으나 단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은 없다. 오로지 후배들의 앞길을 틔우는 데 혼신을 다했으니, 이는 사람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지난달 22~24일 마지막 길을 가는 고인의 빈소에 많은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영정 속 그 천진한 미소 앞에서 그들이 품었을 마음가짐은 무엇이려나. 감히 ‘존경’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사랑’과 함께 인간 의식 수준의 높은 자리에 위치한 것이 존경이다. 존경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터인데, 가장 중요한 척도는 내면의 깊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면의 깊이란 무엇인가. 나 아닌 다른 사람, 곧 타인에 대한 공감 나아가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깊이 있는 사람인지는 어떻게 판단하나. 결국 땅에 발붙여 살아온 삶의 모습에 답이 있는 것이다. 고통에 빠진 사람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 고통을 덜기 위해 자신의 안락을 포기하는 이라면, 존경의 칭호에 값할 만하다. 김민기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이념의 틀이나 진영을 나누는 논리로 가둘 수 없는 큰 사람이다.

1971년에 만든 ‘아름다운 사람’이 귓가를 맴돈다. 슬픔을 이겨내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어루만지는 노래다. 가장 사람다울 때 가장 아름다운 법. 고인의 전 생애가 그랬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했던 ‘아름다운 그이’. 이제 시대의 가인(歌人)에서 영원한 가인(佳人)으로 남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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