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향기 나는 남자야”… 찌는 더위 땀내는 잊어라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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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공방 ‘하루 수업’ 체험기

조향사 도움받아 개인 맞춤 향수 제조
선호하는 향 계열 선택하는 게 첫걸음
여러 향기 맡는 과정 자체가 힐링타임

최애 향을 선별하기 위해 맡아 본 30여 가지의 향수 원액.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 최애 향을 선별하기 위해 맡아 본 30여 가지의 향수 원액.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

요즘처럼 더운 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불쾌한 순간이 있다. 바로 퀴퀴한 땀 냄새다. 반면, 코끝을 스치는 좋은 향기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많은 이들이 향수를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취향에 들어맞는 향수를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워낙 종류가 많은 탓이다. ‘퍼스널 컬러’처럼 나에게 딱 맞는 향수를 찾고 싶다면 향수 공방을 찾아 직접 만들어 보는 게 최선이다. 기자도 ‘나만의 향수’를 찾기 위해 경력 14년의 조향사가 운영하는 부산 수영구 광안동 한 향수 공방을 찾았다.

공방 문을 열자마자 기분 좋은 진한 향내가 풍긴다. 공방에선 다양한 향을 맡아 보고 취향에 따라 향수를 만들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진행한다. 나만의 향수를 만들려면 자신이 선호하는 향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각 향조를 대표하는 향료를 맡아 보면 대략적인 취향을 알 수 있다. 향조는 향수의 계열을 뜻하는데, 과일 껍질에서 나는 상큼한 향인 ‘시트러스’, 장미나 튤립 등 꽃 향기인 ‘플로랄’, 푸릇푸릇한 풀내음인 ‘그린’, 달콤한 과일에서 나는 향인 ‘프루티’, 나뭇가지를 꺾었을 때 맡을 수 있는 ‘우디’, 시원하고 상쾌한 물 느낌을 내는 ‘마린’ 등 다양하다.

사향노루의 분비물에서 채취하는 포근한 향인 ‘머스크’, 향신료나 씨앗에서 나는 향인 ‘스파이시’, 안개 속에 있는 듯 따뜻한 느낌을 내는 ‘오리엔탈’, 한국인들이 유독 좋아한다는 ‘비누’ 향 등도 있다. 이 향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맡아 보고 선호하는 향 두세 개를 고르면 된다. 기자는 꽃향기인 플로랄과 달콤한 과일 향인 프루티 계열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맛보기로 선호하는 향조 몇 개를 고르면, 본격적인 ‘향마카세’가 시작된다. 전문 조향사가 취향에 맞을 만한 향수 원료를 잔뜩 들고 온다. 이 공방에서 보유한 향수 원료만 700개 정도 되는데, 그중 30가지 이상을 시향했다. 사전 정보나 편견이 없는 상태로 오로지 향만 맡아 보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해 자신의 취향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후각은 쉽게 지친다. 각 원료를 스치듯 살짝만 맡아 보는 데도 갈수록 향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이럴 때는 커피 원두 향을 맡으면 후각이 초기화되는 효과가 있다. 정말 마음에 드는 향은 잊지 말고 기록해 두자.

편안히 앉아 ‘향마카세’를 즐기다 보면 절로 즐거워진다. 좋아하는 계열의 향을 연이어 맡을 수 있으니 이만한 힐링이 없다. 그야말로 향기의 향연이다. ‘베스트’ 몇 가지만 골라내기가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여러 향을 맡으면서 힐링하기 위해 혼자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냄새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과 감정까지 생생히 떠오르는 ‘프루스트 효과’ 때문에 시향 도중 울컥하는 수강생도 있었다고 한다.

조향사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나만의 향수. 포장까지 하고 나면 그럴싸한 선물로 탄생한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 조향사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나만의 향수. 포장까지 하고 나면 그럴싸한 선물로 탄생한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

‘향마카세’를 통해 고심 끝에 선별한 원료는 총 10개다. 여기에 조향사가 원료 몇 가지를 추가하고, 원료들의 균형을 고려해 배합 비율을 정하면 오직 내 취향을 반영한 특별한 ‘레시피’가 완성된다. 향수 베이스 용액에 각 원료를 몇 방울씩 넣어야 할지 적힌 비법서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 비율이 얼마나 적절하냐에 따라 향수의 향과 질이 결정된다.

기자가 직접 레시피에 따라 원료들을 배합하고 시향을 해 보니 정말 취향에 찰떡같이 맞는 향수가 완성됐다. 이렇게 만든 맞춤 향수는 냉장고에 3~7일 정도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 뒤 사용할 수 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엔 7일 정도 숙성할 것을 권장한다.

향의 효과는 대단하다. 명품 브랜드 ‘샤넬’ 설립자인 가브리엘 샤넬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향수”라고 말했다. 향기의 중요성을 대중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조향 사업도 활성화하는 추세다. 일부 대학은 ‘뷰티향장학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전문성이 떨어지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조향 체험’이라는 이름을 내걸고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들을 수강생이 섞어 보도록 하는 식인데, 이렇게 대충 만든 향수는 원료끼리 균형이 맞지 않아 제대로 된 향을 낼 수 없다는 게 전문 조향사의 지적이다.

“조향은 단순히 향수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없던 새로운 향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하루짜리 수업을 받으러 온 사람이 직접 조향을 할 수 없는 법이다. 공방을 찾아온 사람이 다양한 향을 맡아 보게 하는 게 수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각자 취향에 맞는 향을 찾을 수 있고, 좋아하는 향을 맡으면서 힐링도 할 수 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조향사의 말에서 자부심과 책임감이 엿보인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심금을 울리는 데에는 모습이나 소리보다 냄새가 제격”이라고 했다. ‘심금을 울리는’ 대상에는 향을 맡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딱 맞는 향을 찾아보고 싶다면, 올 여름엔 주변의 향수 공방을 한번 찾아가 볼 것을 권한다. 심금을 울리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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