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XY염색체 여자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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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년 4월 27일(음력), 8년 차 조선 임금 세조에게 사헌부발 보고가 올라왔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는 사방지라는 인물이 사대부가 미망인과 정을 통했다는 첩보가 있어 잡아다 놨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묻는 내용이었다. 괴이쩍다 여긴 세조가 알아보게 한 바, 사방지는 분명 음경과 음낭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음경의 모양이 여느 남자와는 달랐고, 무엇보다 사방지의 겉모습이 다분히 여자였다. 조사관들은 “이의(二儀·요즘 말로 ‘양성’)의 사람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알고 보니 사방지는 여승과도 관계를 가졌다는 등 이전부터 추문이 많았다. 조정이 들끓었다. 남자가 여자인 척 행동하면서 물의를 일으켰으니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세조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신하들의 잇단 처벌 요구에도 “사방지는 병자(病者)다. 추국하지 말라”고 할 따름이었다. 항의하는 도승지에겐 “먼저 편벽된 마음부터 버려야 한다”고 타일렀다. 여러 날 동안 논란이 식지 않자 세조는 “전하는 말을 들었을 뿐 간통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다. 사방지는 어릴 때부터 여자로 살았다. 처벌은 불가하다”고 거듭 밝혔다. 결국 별다른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건은 마무리됐다.

항간에 떠도는 야사가 아닌 조선왕조실록에 엄연히 기록된 내용이다. 지금 눈으로 봐도 당시 세조의 성에 대한 식견이 남다르다고 하겠는데, 유사한 일이 지금 파리 올림픽에서 벌어지고 있다. XY염색체를 가진 이마네 칼리프(알제리)와 린위팅(대만)이 여자 복싱 66kg급과 57kg급에 각각 출전해 메달까지 획득하자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남자가 왜 여자 종목에 출전했냐”는 비난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두 선수에게 패한 선수들이 특히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남 또는 여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성은 동서고금에, 아주 드물지만, 존재해 왔다. 성염색체가 XY(남성)임에도 여자의 몸을 가졌거나, XX(여성)이면서 남자 생식기를 가진 경우가 그랬다. 사방지는 후자, 칼리프와 린위팅은 전자에 해당하겠다. 이를 천형(天刑)으로 여기는 건 당치않다. 칼리프와 린위팅은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자랐다. 이는 그들의 고국이 공인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수용한 사실이다. 성인이 돼 성을 전환한 것도 아닌 터에 지금 같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들을 악마화하는 건 혹 세조가 지적한 바 편벽된 마음이 아닐는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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