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성 왜구 감시 '박견' 조각상 일제 잔재 논란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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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부산시 유형 문화유산 지정
석상에 팔굉일우 등 식민 구호 발견
학계에선 정밀한 검증 요구 목소리

부산 수영구 경상좌수영성 남문 앞에 설치돼 있는 박견 조각상. 김준현 기자 joon@ 부산 수영구 경상좌수영성 남문 앞에 설치돼 있는 박견 조각상. 김준현 기자 joon@

왜구를 감시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알려진 부산 경상좌수영성 남문 앞 ‘박견’ 조각상이 사실은 일제 잔재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인다.

7일 부산시와 수영구청에 따르면,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박견 조각상은 1972년 부산시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동남해안 안보를 책임졌던 경상좌수영성의 역사적 의의를 고려해 경상좌수영성 남문이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문 앞에 있던 박견 조각상도 포함됐다.

통상 주요 출입문 앞에 해태 동상을 세워 놓는 것을 고려했을 때, 개 모습 조각상이 성문 앞에 설치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2018년 5월 발행된 부산시보는 경상좌수영성 남문을 소개하면서 ‘전면 양쪽의 우주석에는 조선시대 도둑을 지키는 용맹스러운 개, 박견 한 쌍이 버티고 앉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박견 조각상이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제 잔재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일제 강점기 시절 촬영된 사진이 근거다.

촬영 시기가 1941년인 사진 속 박견 조각상에는 ‘충효일본(忠孝一本)’, ‘팔굉일우(八紘一宇)’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 팔굉일우는 ‘전 세계가 하나의 집’이란 뜻으로 태평양 전쟁에 접어든 일제가 세계 정복을 위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 식민지 등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구호다. 현재는 시멘트로 뒤덮여 있다.

이러한 제보에 대해 수영성마을박물관 전미경 관장은 “박견이 왜구를 물리쳤다는 인식은 후대에 새로 덧씌워진 것 같다”며 “경상좌수영성 남문의 돌과 박견의 돌 노후화 상태가 달라서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반면 시와 수영구청 측은 박견 조각상이 일제 강점기 때 조성됐다는 명확한 사료가 없는 이상 무턱대고 시 유형 문화유산 지정을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논란이 불거진 만큼 검증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남성곽연구소 나동욱 소장은 “‘팔굉일우’라는 글자 이전에 남상면립이란 글자가 있었다. 과거 수영구 행정구역 명칭이 남상면이었는데, 대략 1904년 전후로 박견 조각상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경상좌수영성 남문을 원래 자리로 옮기면서 이를 계기로 박견에 대한 정밀한 연구도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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