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읽기] 스노우맨, 밤이 없을 것 같은 브라질로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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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헌터스 / 폴 윤

<스노우 헌터스>는 한국전쟁 북한군 포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북한군 포로 요한이 브라질의 항구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요한이 북한 송환을 거부하고 중립국인 브라질에 정착해 생활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설정상 최인훈의 <광장>이 떠오르지만, 그보다 과감하게 나아간다.

그의 별명은 ‘스노우 맨’이다. 폭격 속에 정신을 잃고 눈 속에 파묻혀 있다 미군에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제목인 ‘스노우 헌터스’는 그가 목격한 피난민 가족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필사적으로 생필품을 찾으려고 눈 속을 헤집는 모습을 표현했다. 하필 브라질을 선택한 이유는 “태양이 강렬하다(밤이 없을 것 같다)고 들었다”는 대목에서 짐작이 간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다들 순수하다. 북한군의 일원으로 남하하던 요한은 몸을 숨긴 두 소녀와 맞닥뜨리지만 못 본 척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살짝 두고 떠나는 장면도 그렇다. 요한이 브라질에 정착한 뒤 일본인 노 재단사 밑에서 일하고, 그의 뒤를 잇는 모습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디아스포라’를 우리식으로 이야기한 영화 ‘미나리’가 그랬듯이 이 소설도 세계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념보다 사람이 중요한 법이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폴 윤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쓴 첫 장편소설이다. 문장이 너무 순수해서 초자연적인 느낌이 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한 부산의 황은덕 소설가는 “작가 특유의 문체로 인해 인쇄된 단어의 숫자보다 행간의 의미가 더 풍부하다”고 말했다. 초안 500쪽에서 200쪽으로 압축된 소설이라니 느린 독서가 필요하다. 폴 윤 지음/황은덕 옮김/산지니/272쪽/1만 8000원.


<스노우 헌터스> 표지. <스노우 헌터스>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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