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인가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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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권은선 외

우리가 놓치고 있던 관점 둘러싼
페미니스트 11명의 시대논쟁 엮어
강제성 여부 등 새로운 시각 제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표지.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표지.

최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임명 전 인사청문회에서 “위안부는 강제 동원이었나, 자발적이었나”라는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질문에 “논쟁적인 사안”이라고 답해 파문을 일으켰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이라는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이 방통위원장의 발언이 떠올랐다. 책은 페미니스트 석학 11명이 쓴 위안부와 관련한 시대논쟁의 글을 모았다. 청문회 당시 최 국회 과방위원장은 “그것이 어떻게 논쟁적 사안이냐”라며 이 방통위원장의 뇌 구조를 문제삼기까지 했다. 그런데 석학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1993년 고노 담화에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은 “전지(戰地)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나라(일본)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고 밝혔다. 일본 스스로 ‘강압적’이었다고 인정한 내용을 ‘논쟁적’이라 얼버무린 이 위원장에 대해선 논할 가치도 없다. 그러나 최 위원장의 질문 역시 적절하지는 않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는 이 위원장의 주장과는 별개로 여전히 논쟁적이다. 책의 여러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강제성에 집중해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자 중 한 명인 재일한국인 야마시타 영애(일본 분쿄대 문학부 교수)는 위안부의 강제성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조선인 위안부가 강제로 연행된 것이라는) 이 주장은 다양한 사례가 있었을 터인 동원 과정을 단순화시켰고, 여성의 전력, 성 경험의 유무, 처녀인가 매춘부인가 등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 중심적 관점에 따라 피해자를 분류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자발적이든 강요된 것이든 위안부라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진데, 강제성 등 기타 조건에 따라 그것이 다르게 평가되는 것을 우려한 내용이다. 실제로 고노 담화 직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는 “일본인 위안부는 기존의 매춘부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었기에 성노예인 조선인 위안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인 위안부의 가족이라면 정대협의 주장이 곱게만 들리지 않을 테다.

다른 저자 정희진(전 이화여대 초빙교수)은 기지촌 성 산업 제도에 대한 대법원 판결(2022년)을 언급한다. 스스로의 선택 여부와는 상관 없이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기지촌 성 산업에 종사한 여성 모두가 빈곤·인종·젠더·지역 등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이 판결의 골자다. 이어 정 교수는 묻는다. 형식적인 주권이나마 보장받은 한국 사회에서의 기지촌 성 산업조차 ‘구조적 폭력’으로 인식되는데, 식민 상황 아래의 위안부들은 왜 지금까지 강제성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냐고.

11명의 석학은 책을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안부에 대한 여러 관점을 제시한다. 사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뿐만 아니라 당연히 생각하고 있어야 할 관점조차도 놓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누구나 ‘더이상 논쟁의 여지도 없는 명백한 사안’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정대협의 풀네임 속 ‘정신대’라는 용어가 ‘위안부’와는 전혀 다른 의미임에도, 그것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오랜 세월을 혼용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처럼, 여전히 우리에게는 좀더 논쟁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들여다볼 책임이 있다. 권은선 등 지음/휴머니스트/472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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