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 칼럼] 인기 시들한 파리 올림픽, 한국은 또 서울 올림픽?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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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우리 선수단 맹활약에 국민들 환호
반면 올림픽 관심도는 갈수록 저하
파리 개막식 시청률 역대 가장 낮아
서울시 2036년 대회 유치전 돌입
국가 차원 타당성 놓고 갑론을박
지방 먼저 배려하는 올림픽 돼야

2024 파리 올림픽이 점차 종반전을 향하고 있다. 애초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던 우리나라 선수단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초반부터 금메달 낭보를 전하며 국민들에게 폭염 대피소 같은 역할을 했다. 국민들도 우리 선수단의 계속되는 선전에 파리 올림픽을 더 자주 대화의 소재로 삼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시들해지는 추세다. 시대와 세대가 변하면서 한때 전 세계인이 열광하던 올림픽은 점점 과거의 일이 되고 있다. 올해 파리 올림픽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구글 트랜드에 따르면 올림픽에 대한 전 세계의 7월 검색량은 24로, 하계 올림픽 기준 역대 최저치였다고 한다. 검색량이 가장 많을 때를 100으로 한 것인데, 2008년 이후 매년 그 수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CNN방송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을 시청한 미국인은 1700만 명으로, 역대 가장 적었던 2016년 리우 올림픽 개막식보다도 무려 36%나 줄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이 올림픽 직전 시행한 여론조사를 보면 파리 올림픽에 관심이 간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53%에 불과했는데, 실제로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지상파 3사 시청률은 0.6~1.4%로 역대 최저치였다. 저조한 관심으로 인해 일부에선 조만간 올림픽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가 아니라도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도를 더해 가는 상업주의에다 자기중심의 개인주의 성향의 강화로 점점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위 선양, 집단주의 등 과거에 통용됐던 올림픽의 의미는 이제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들도 그렇지만 직접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도 애국심 등 국가주의적 관점보다는 자기 명예나 자아실현에 더 가치를 둔다.

세계인의 관심도 저하는 IOC 처지에서는 가장 주요한 수입원인 방송중계권이나 기업의 협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IOC의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흐름은 올림픽 개최 자체가 바로 그 개최 도시에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림픽 개최를 통한 경제적인 흑자 달성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하며 경기장 건설 등에 대한 시설 투자를 최대한 줄이고 줄인 파리 올림픽조차 간신히 흑자를 낼 정도라고 하니 ‘올림픽 퍼주기’를 작정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대회 개최는 더욱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올림픽 개최에 따른 손실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이 약 57억 달러,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약 52억 달러,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약 43억 달러였다고 한다. 특히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개최국인 그리스의 재정 부담이 너무 커 2015년 국가채무 불이행 선언의 한 요인이 됐다. 올림픽 개최는 이처럼 그리 만만하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2036년 하계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든 서울시의 행보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서울시는 조만간 정부에 개최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고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하면 국고 투입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주요 강점으로 들고 있다.

이런 요인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분야라도 서울을 능가할 곳은 없다.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또 올림픽을 개최한다면 지방에 있는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안 그래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집중으로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진단과 분석이 곳곳에서 속출하는 상황이다. 2036년 올림픽을 유치한다면 서울보다 먼저 지방을 염두에 두는 게 맞는다. 여건만 놓고 본다면 서울만 한 곳이 없고 또 모든 게 열악한 지방의 역량으로는 올림픽 개최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도 오롯이 서울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한 거국적 행사였음은 모든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올림픽에 대한 인식 변화를 무릅쓰고 다시 이를 유치하려고 한다면 모든 여건이 포화 상태인 서울 개최는 국가 전체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차라리 서울보다는 지방을 개최지로 선택해 지방 살리기의 대전환으로 삼는 것이 당면한 국가적인 대의에 훨씬 더 부합한다. 36년 전 서울 올림픽이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처럼 다시 올림픽을 유치한다면 이는 위기에 처한 지방 부활의 대전환점으로 각인돼야 할 것이다. 향후 정부의 검토 과정에서 이 부분은 핵심적인 사항으로 다뤄져야 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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