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억 들였는데 애물단지로… 방문객 없는 가게도 수두룩[산복도로 '볕 들 날']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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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볕 들 날'] 3. 발길 끊긴 주민 거점시설

부산 7개 구 63곳 문 열었지만
78%가 연 매출 3000만 원 미만
7곳 폐업, 21곳 사실상 적자 수준
고장난 냉장고 문밖 덩그러니…
“공공요금만 내면서 연명해요”
짓기만 하고 사후관리·교육 안 해
핵심시설 위주 ‘선택과 집중’ 필요

부산 서구 남부민동 도시재생 거점시설인 ‘남일이네 생선가게’는 경영난으로 2019년 영업을 중단했다. 이후 지난 8월 씨웰푸드 협동조합이 운영을 재개했다. 강선배 기자 ksun@ 부산 서구 남부민동 도시재생 거점시설인 ‘남일이네 생선가게’는 경영난으로 2019년 영업을 중단했다. 이후 지난 8월 씨웰푸드 협동조합이 운영을 재개했다. 강선배 기자 ksun@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후 마을마다 ‘거점시설’들이 들어섰다.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특산물 가게나 커피숍 같은 것들이었다. 관광 활성화를 마을 수익으로 이어보자는 지속적인 발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0년간 300억 원 가까운 투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시설은 텅 빈 애물단지가 됐고 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상’ 등급 평가에도 하루 방문객 ‘0’

지난 17일 식혜, 한과 등을 판매하는 부산 동구 초량동의 ‘죽림공동체’. 온종일 조합원 몇 명이 놀러 와 담소를 나눌 뿐,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은 없었다. 건물 밖 덩그러니 놓인 고장난 대형 냉장고가 이곳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냉장고 수리비가 부족해 방치됐다는 게 조합원의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80대 조합원은 “초기엔 50~60대 등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참여했지만, 돈이 안 되니 점점 참여를 안 하더라”며 “외부 방문객도 줄고, 지금은 간신히 공공요금만 내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죽림공동체는 2013년 시비 2억 6000만 원을 투입해 조성됐다. 마을 주민이 모여 잘 운영하며, 수익도 내고 공동체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해의 경우 연간 손님은 150명으로, 2~3일에 한 명 정도 손님이 있었다. 연간 매출도 1429만 원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2021년 진행된 부산연구원의 거점시설 활용도 평가에서 죽림공동체는 ‘상’ 등급으로 분류됐다. 중, 하 등급의 대다수 거점시설의 실상이 어떠할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2011~2020년까지 산복도로 르네상스 도시재생 사업 기간 부산 7개 구에 거점시설 63개가 문을 열었다. 총사업비는 295억 7800만 원에 달했다. 현재는 그중 7곳이 폐업했다. 남은 56개 시설 중 28곳이 매출 집계가 가능한 수익 사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 28곳은 주민이 모이는 일종의 사랑방이나 문화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지난해 수익형 거점시설 28곳의 매출을 분석한 결과, 평균 연 매출은 1543만 원에 불과했다. 75% 해당하는 21곳이 연 매출이 3000만 원 미만으로, 월 250만 원 매출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설 경비, 원자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수익이 매우 낮거나 적자 수준이다. 특히 연 매출 1000만 원 미만 시설도 14곳으로, 일반적인 상점이었다면 이미 ‘망한 가게’였다.



■산복도로 한켠, 잊혀 간 생선가게

부산 서구 남부민동의 거점시설 ‘남일이네 생선가게’는 불이 꺼진 채 여름을 보냈다. 문손잡이에 꽂힌 전기세 고지서와 창문 너머 쌓여있는 각종 고지서 등은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겼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선가게 옆에서 양곡점을 운영하는 반 모(86) 씨는 “장사가 잘 안돼 자주 문을 닫거나 운영 주체가 바뀌곤 했다”며 “애초에 주민도 적은 동네에서 무슨 장사를 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혀를 찼다.

2015년 시비 4억 6000만 원이 투자돼 만들어진 남일이네 생선가게는 주민들이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싸게 들여온 생선을 주민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용도였다. 설립 초기에 설 명절 선물용품으로 수익을 올리고, 지역 축제에 생선을 납품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 3년 차인 2017년부터 시의 사업비 지원이 끊기면서 경영이 삐걱댔고, 결국 2019년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 8월 씨웰푸드 협동조합으로 사업주체를 바꿔 운영을 재개한 상황이다.

산복도로에 혼재한 다른 거점시설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점차 사라지거나 잊히고 있다. 거점시설은 사업 초기 지역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모여 만들어진 주민협의체에 의해 추진됐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운영이 어려웠다. 고령의 주민들이 시설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고 적절한 교육도 부족했다. 거점시설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에서 준비 없이 시설만 들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자문위원이었던 부산연구원 오재환 부원장은 “문제는 거점시설을 짓고 나서 주민들을 위한 사후 관리가 없었던 점”이라며 “사업이 진행되며 수익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관리나 대안 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관련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당시의 백화점식 거점시설 설립은 지양하고, 현황 파악 등 철저한 준비 속에서 핵심적인 시설 위주로 키워야 한다는 거다. 선택과 집중으로 사업비가 줄면 주민들이 원하는 편의시설 투자도 가능하다. 도시재생 시설을 운영하는 소셜벤처기업 어반브릿지 이광국 대표는 “오랫동안 준비한 창업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기 어렵다. 하루아침에 고령의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주고 지속적인 수익을 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며 “기존 거점시설에 대한 꾸준한 관리 방법을 고민하고 주민들이 정말 바라는 편의시설을 적극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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