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난에 예산축소 위기까지… 갈 길 먼 장애인 씻을 권리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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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구, 이동목욕차량 중단
남성 요양보호사 절대 부족
예산 삭감 ‘엎친 데 덮친 격’
16개 구·군 사정 마찬가지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제공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부산장애인총연합회 제공

부산 영도구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업이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다가 시행 16년 만에 결국 중단됐다. 요양보호사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르는데, 부산시는 오히려 사업 예산을 줄이려는 움직임마저 보여 장애인의 ‘씻을 권리’가 크게 위협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영도구청은 지난 9월부터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업을 중단했다고 8일 밝혔다. 혼자 씻기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구청이 2007년 관련 사업을 시행한 이후 16년 만이다. 앞서 지난해 동래구청도 관내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남성 요양보호사 부족이 이동목욕차량 사업 중단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남성 이용자를 담당할 남성 요양보호사 구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실제로 위탁단체인 와치종합사회복지관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남성 요양보호사 채용공고를 꾸준히 올렸지만, 지원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와치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영도구에는 이용자 9명 중 대부분이 남성인 만큼 남성 요양보호사가 절실하다”면서도 “남성 요양보호사가 구해지지 않아, 기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복지관 남자 직원이 일을 거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 현상은 비단 영도구뿐만 아니라 부산 전역의 공통 사항이다. 부산 16개 구·군을 대상으로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업을 담당하는 (사)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부산시장애인재활협회 두 단체도 남성 요양보호사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설명했다. 해운대구, 수영구, 금정구 등 8개 구·군을 담당하는 부산장애인총연합회의 경우 남성 요양보호사는 1명뿐이다. 한 사람이 8개 구·군의 남성 이용자 목욕을 도맡아 하는 셈이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 관계자는 “장애인을 옮기고 씻기는 노동강도에 비해 보수는 최저 임금 수준이다. 이직도 잦고 사람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우리도 50대 남성 요양보호사 한 명이 차량을 몰면서 장애인들 목욕까지 하고 있다. 사명감 없이는 정말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만성화된 인력난에 더해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업 예산마저 줄어들 위기다. 최근 시가 두 단체에 올해보다 감축된 규모로 내년 예산안을 상정하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올해 두 단체가 받은 사업비 총합은 2억 2500만 원으로 최근 시에 올해보다 15%가량 감소한 예산안을 보냈다는 게 단체 설명이다. 두 단체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사업은 전액이 시 보조금으로 충당되기에 예산이 줄어들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 관계자는 “이동목욕차량 사업 특성상 주행부터 목욕물 데우는 것까지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데, 통상 한 달 유류비만 40만~50만 원 수준”이라며 “이번에 영도구청이 이동목욕차량 사업을 중단하면서 우리 단체가 영도구를 맡게 됐는데, 예산이 줄어들면 자칫 월 2회 무료 목욕 횟수를 월 1회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시는 우선순위대로 사업비를 순차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올해 장애인 이동목욕차량 예산안 감축을 거론했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올해 시 보조금 사업 현황이나 재정 상황을 보았을 때,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어서 감축을 말한 것”이라며 “다만 아직 예산안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예산이 줄어들 것이라고 섣불리 확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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