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 참다 방광염… 건설 현장 여성은 볼일도 못 본다[안전한 일터 우리가 만든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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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일터 우리가 만든다]

건설 현장 노동자 중 여성 14%
증가 추세 속 탈의실 등 시설 미비
공공 발주 14곳 중 4곳 화장실 없어
3명 중 1명 “제때 못 가”… 병 키워
법 개정·인식 개선 노동권 보장을

한 건설 현장의 여자 화장실. 관리자가 없어 휴지가 쌓여 있는 등 비위생적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제공 한 건설 현장의 여자 화장실. 관리자가 없어 휴지가 쌓여 있는 등 비위생적이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제공

건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지만 탈의실, 휴게실 등 기초적인 편의 시설 확보는 미비하다. 특히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여성 노동자가 생리 활동을 참다 병에 걸리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는 21만 6230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체 건설 현장 노동자 147만 4513명의 14%가량이 여성 노동자인 셈이다. 또한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가 13만 231명이었던 2013년과 비교하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 증가세와 달리 그들의 정당한 노동권 보장은 요원하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발주한 전국 14곳의 건설 현장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2023 폭염기 공공공사 건설현장 편의시설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전용 샤워실과 탈의실이 마련된 건설 현장은 한 곳에 불과했다. 대다수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거나 일과 이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다.

여성 전용 샤워실과 탈의실은 부족한 반면 남녀를 구분하지 않은 일반적인 샤워실, 탈의실은 비교적 양호한 수치를 보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9곳의 건설 현장에서 일반 샤워실, 7곳의 건설 현장에서 일반 탈의실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통계에 나타나는 편의 시설은 여성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건설 현장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노동자가 해당 편의 시설을 사용하는 와중에 여성 노동자가 쉽사리 이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건설 현장 18년 차인 원 모(54) 씨는 “탈의실이 없어서 주로 차량에서 옷을 갈아입는다”며 “공용 휴게시설은 주로 남성 노동자가 사용하는데, 여성 노동자가 들어오면 서로 불편함을 느낀다. 사실상 여성 노동자가 이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건설 현장에 여자 화장실이 아예 없는 경우도 이번 실태조사에서 파악됐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 현장 4곳에서 여자 전용 화장실이 없었다. 정상적인 생리 활동을 제약받으면서 노동권을 넘어 인권조차 보장이 안 되는 것이다.


화장실에 대한 불편 사례는 지난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건설 현장 여성 노동자 1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화장실 이용실태 설문조사’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3명 중 1명(30.6%)은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화장실이 너무 멀거나 인근에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당시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여성 노동자는 “건설 현장에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이 한 개씩 있는 탓에 남자들이 자꾸 여자 화장실을 사용한다. 화장실 숫자를 늘려달라”고 답하기도 했다.

화장실 이용에 대한 제약은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55명의 응답자가 지난 1년 내 의사에게 방광염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외에도 만성 변비, 질염 등 제때 화장실을 가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질병이 언급됐다. 건설 현장 18년 차인 이도연(53) 씨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화장실이 없거나 비위생적인 곳이 많아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 여성 노동자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방광염에 걸려서 약을 달고 사는 다른 여성 노동자를 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비주류인 데다 생리 활동 관련 문제가 공론화하기 힘든 탓에 개선이 지지부진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목소리가 작은 것이 그러한 수요나 요구가 없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는 “현재 건설 현장에서 화장실 설치는 권고 수준에 그친다. 또한 쉽사리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든 생리활동과 관련 있어 그동안 화장실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며 “앞으로 건설 현장에서의 법 개정과 더불어 사업주 역시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부산일보가 공동으로 마련했습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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