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형 개헌 한다 하니 지방분권 하는 줄…[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 가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부산일보DB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부산일보DB

대한민국에서 개헌 논의는 비등점에 다다르고도 오랫동안 끓어 넘치지 않는 물과 같은 상태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개헌 절차에 들어가기 위한 정치 협상 단계에서 항상 벽이 생기곤 한다. 그럼에도 현행 헌법이 가지는 여러 공백들이 비상계엄과 이후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개헌 논의는 언제든 또다시 불거질 터이다.

개헌 논의가 이슈로 떠오르면 입버릇처럼 나오는 표현이 하나 있다. ‘분권형 개헌’이 그 주인공이다. 권한을 나누는 형태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이니 왠지 더 민주적인 것 같고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이 표현을 두고 수도권 정치세력과 비수도권 국민들이 가지는 생각은 천양지차다.


지난해 4월 우원식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4월 우원식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수도권 정치세력의 생각

수도권 정치세력들이 분권형 개헌을 얘기할 때는 주로 대통령과 총리 혹은 국회 사이의 권한 배분을 의미한다. 정부 형태의 변경이 핵심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현행 헌법 하의 대통령은 권한이 막강해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리는 만큼 대통령 권한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고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정부 형태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돼야 한다는 게 분권형 개헌의 골자다. 대통령제적 분권형이나 총리 중심 분권형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 임기의 중임 여부 등을 통한 권력 구조 재설계에 가깝다.


지난해 3월 대한민국헌정회, 지방분권전국회의 등 7개 단체가 주최하고 부산시민단체협의회 등 9개 단체가 개최한 '헌법개정 부산 결의대회 및 국민주도 개헌 토크쇼'에서 지방분권 개헌 필요성을 부르짖는 모습. 부산일보DB 지난해 3월 대한민국헌정회, 지방분권전국회의 등 7개 단체가 주최하고 부산시민단체협의회 등 9개 단체가 개최한 '헌법개정 부산 결의대회 및 국민주도 개헌 토크쇼'에서 지방분권 개헌 필요성을 부르짖는 모습. 부산일보DB

■비수도권 국민들의 생각

비수도권에서 분권형 개헌을 얘기할 때는 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권한과 재원의 재배분을 의미한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핵심이다. 자주재정권, 자치입법권, 자치조직권 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수도권 쏠림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중앙정부에 권한과 재정이 집중되는 현 정치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논리다. 자치입법권·재정권 강화를 필두로 지역 대표형 상원제 도입과 시도지사 장관급 격상 등의 대안까지 광범위하게 거론된다. 현행 헌법에 선언적으로만 삽입돼 있는 지방자치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중앙-지방 관계를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왜 헷갈리는가

분권형 개헌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한 축소를 넘어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어떻게 총리나 국회뿐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전반적으로 재배분할 것인지를 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도권 정치세력은 주로 정부 형태 변경이나 대통령 임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지방분권은 부수적 의제로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 개헌 논의에서도 지방분권은 대통령 연임 논란, 권력구조 개편, 5·18과 부마항쟁의 헌법 전문 수록 등의 이슈에 가려 흔적도 찾기 힘든 상태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정기국회 제4차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 시도에 사적 이익 추구 의혹이 있다며 현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부산일보DB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정기국회 제4차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 시도에 사적 이익 추구 의혹이 있다며 현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부산일보DB

■지방분권 개헌의 갈 길

분권형 개헌 논의에서 후순위나 선언적 표현 정도로 밀린 지방분권을 실질적 의제로 만들려면 '지방분권을 개헌에 포함해 달라'는 요구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오히려 권력구조 개편과 교환 가능한 구체적인 조문 패키지를 제시하고 나서는 노력이 더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 조문 패키지에는 지방분권을 헌법 전문 혹은 총강의 국가운영 원칙으로 명시하고 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자치조직권 등의 조문 명시, 동남권 등 광역 공동 권한과 재정 기반의 보장 명시 등의 내용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

분권형 개헌을 한다고 하니 지방분권 개헌하는 줄 알았다고 뒤늦게 한탄해서는 의미가 없다. 국민의힘이 현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개헌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수면 아래에서 여전히 끓고 있다.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비수도권 국민들은 이제부터라도 수도권 정치세력들이 분권형 개헌의 실현 방향을 어떻게 잡아나가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필 일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