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가장 오래된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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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필가
인간과 돌, 뗄 수 없는 운명 맺어
돌과 다른 물상 관계 찾는 예술가
돌 하나가 우주 전체 상징할 수도

흔히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흙이 뭉쳐 돌이 되고 돌이 부서지면 흙이 되니까 돌에서 태어나 돌로 돌아간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인간과 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으로 맺어졌다. 원시인들은 돌지붕 아래로 몸을 피했을 것이고 돌을 깨고 갈아 손도끼, 주먹도끼, 돌칼, 찌르개를 만들고 부싯돌로는 불을 피워냈다. 그 불은 다시 돌 속의 구리나 쇠를 녹였을 것이며 옥돌, 곱돌, 흑요석 등으로 만든 장신구를 걸치고 사후에는 돌널이나 돌무덤 속에 돌비석을 세워두고 잠들었다.

돌은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강과 바다까지 널렸지만, 인간은 돌이 그 어떤 자연물보다도 신통력이나 영험함이 강하다고 믿어 특별히 받들었다.

시인들은 산의 뼈이자 대지의 뼈와 물의 뼈로 추앙하고 철학자들은 각자의 목소리로 돌의 근원을 밝혀내며 조각가들은 돌덩이 속에서 신들의 형상을 들어내었다. 그런데 자연의 돌을 제시하여 다른 물상과의 관계를 짚어보는 예술가가 있다. 그는 왜 돌을 찾아 나섰을까. 그가 돌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의 돌들을 만나고 싶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앞마당 잔디밭의 돌 작품부터 발길을 잡는다. 철판이 탁자처럼 가운데 있고 네 개의 돌이 둘레에 덩그러니 놓인 것에 ‘회의’라는 제목이 붙었다. 의인화시킨 기발한 상상에 정신이 퍼뜩 든다. 그렇지, 사람이든 돌이든 모양도 쓰임도 다 제각각이니까. 막돌, 굄돌, 푸석돌, 뭉우리돌, 거석, 박석, 하마석, 사암, 괴암, 화강암, 현무암 등 부지기수이며 단단하거나 퍼석한 것, 쓸모 있거나 없는 것으로, 혹은 귀한 것과 흔한 것 등 오죽 많은가. 사람 또한 여기 모인 여남은 명의 표정도 각기 다르다. 그들은 대체 이 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소재를 선택하였으리라.

그것은 돌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하였다. 마음에 드는 돌 하나를 얻기 위해 팔도를 너머 세계 각처를 한없이 돌아다녔다. 이곳에 설치한 돌덩이만 보더라도 수석인이 찾는 꽃돌과 형상석과 산수경석이 아니다. 별난 문양이나 화려한 무늬로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와 바람의 오랜 흔적이 묻어 있는 돌, 들판과 강변의 세월을 묵묵히 버틴 지극히 평범한 돌이 철판과 만나 작품을 이루었다.

그동안 산길이나 들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돌을 눈여겨본 일이 드물고 공장에서 가공된 철판이 온갖 쓰임새로 쓰여도 크게 관심 가진 적도 없다.

더군다나 이 둘의 결합도 생소하지만, 예술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의 인식이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 돌이 무엇이란 말인가. 돌덩이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말이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감상자의 이 점을 노렸다고 한다. 의문을 품는 순간 돌과의 관계는 맺어졌고 돌과의 대화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저 돌의 진짜 작가는 자연인가 사람인가 하는 논란부터 시작되겠지만 듣고 있는 돌은 입을 닫고 말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이 침묵한다고 말한다. 혹은 죽은 돌이라고도 지칭한다. 그러면 죽었다는 것은 이전에 깨어 있었다는 말인가.

침묵한다는 것은 말을 하였거나 곧 말할 수 있다는 전제가 되지 않은가. 하나 안에 전체가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고 한 불법이나, 돌 알에서 인간이 태어났다고 여기는 어느 부족들의 믿음을 생각한다면, 이 작은 돌 하나가 우주 전체를 상징할 수도 있는 법. 그것은 인간이 아직 듣지 못한 가장 오래된 언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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