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격차 해소라는 난제
이자영 경제부장
반도체 호황·역대급 수출 실적에도
특정 지역·일부 대기업만 ‘온기’
AI 대전환 속 K자형 양극화 심화
자산·교육 등 간극 메울 정책 시급
공공기관 이전·메가특구 지정 기대
우리나라 수출 실적이 사상 최대 기록을 쓰고 있지만, 이를 체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정 산업에 기댄 탓이다. 경기가 나아졌다고 느낄 만한 신호는 ‘반도체 벨트’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선 감지되지 않는다. 일부 대기업에선 수억 원의 성과급을 받게 됐다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겐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AI(인공지능) 대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K자형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모양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8월 대기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증가한 반면,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0.8% 감소했다. 올 1∼8월 기준 대기업 생산지수는 2024년부터 3년 연속 오름세를 기록 중이지만, 중소기업은 2023년부터 4년째 내림세다. 수출 호조에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 달러 달성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대다수의 국민은 정작 쓸 돈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다.
격차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순자산은 4억 7144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반면 소득 하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같은 기간 4.9% 감소했다. 소득 수준에 따른 저축 여력의 차이에 더해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자산 가격 상승세가 상하위 격차를 더 벌려 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는 부동산 경기마저 수도권과 지역을 철저하게 갈라 놓는 양상이다. 서울 집값은 87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가며 문재인 정부 때 기록한 최장 상승 기간(85주)을 넘어섰다. 반면 지방 부동산은 미분양 아파트가 쌓이고, 전세 매물 찾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업체 직방이 올해 청약시장(1월 1일~9월 18일 모집공고 기준)을 분석한 결과 부산(0.6 대 1)과 울산(0.8 대 1)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은 1 대 1을 밑돌았다. 반면 서울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은 63.1 대 1을 기록했다. 아크로서초의 경우 일반공급 30세대에 3만 2973건이 접수돼 1100 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수도권과 지방에 대한 부동산 정책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정부는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역 간 격차는 교육 격차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최근 공개한 ‘서울대 신입생 지역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6학년도 서울대 수시·정시 최종 등록자(3673명) 가운데 수도권 고교 출신이 전체의 68.2%(2504명)를 차지했다. 심지어 서울 강남구 한 곳에서 배출한 서울대 신입생 수가 부산 지역 전체 고교 출신보다 2.4배나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쯤 되면 ‘국립 서울대’의 위상이 ‘시·도립(서울·인천·경기) 서울대’로 격하됐다고 보는 게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교육 양극화’의 웃지 못할 단면이다. 부모의 자산과 거주 지역이 자녀의 대학과 미래를 결정 짓는 시대. 지방 출신의 가진 것 없는 청년들에게 교육과 취업, 자산 취득의 기회를 열어줄 정책을 국가도, 지방정부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다행히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지역 국립대 등록금 무상화 정책의 영향이 이 같은 양극화에 일부 균열을 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지역거점 국립대 수도권 학생 지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마감된 2027학년도 수시모집에서 9개 거점 국립대에 지원한 수도권 고교 출신은 5만 2000여 명에 이른다. 전년 대비 12%가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지역거점 국립대의 인기가 청년 인구 유입의 기회가 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부산대 캠퍼스를 품고 있는 부산 금정구가 얼마 전 인구감소지역에 새로 편입돼 지역민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특히 부산대 상권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시철도역에서부터 젊음의거리로 불리는 정문 앞까지 10대, 20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활기가 넘쳤던 곳이기에 격세지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많다.
청년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꼽히는 만큼 조만간 있을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메가특구 지정에 거는 기대도 크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지방주도 성장의 핵심 전략이 될 이들 정책이 심화되는 양극화의 간극을 메울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임해 주길 바란다. 나눠 먹기식 정책이나 생색 내기식 발표로는 지역도, 균형도, 발전도 없을 것이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