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쏟아진 달러, 원화 환율 상승 막았다
미국 금리 인상에도 1330원 대
9월 일시적 반등 이후 다시 하락
국내 달러 공급 늘어나 억제 효과
미 금리 추가 인상 땐 상승 압박
반도체 업황 따라 환율 널뛸 듯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330원대로 내려왔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1500원 뉴노멀’까지 거론됐던 원달러 환율이 두세 달 만에 1330원대로 내려왔다. 미국의 추가 긴축 우려가 환율을 밀어 올리는 상황에서도 반도체 수출 호조로 유입된 달러가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30분 기준 1335.1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7.7원 내리며 주간거래를 마쳤다. 지난 6월 말 1549.4원보다 214.3원, 13.8% 하락한 수준이다. 환율은 이날 장중 한때 1333.2원까지 떨어져 2024년 10월 이후 약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6월 초 장중 1560원을 넘어섰던 환율은 7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SK하이닉스의 약 265억 달러 규모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이 수급 변화의 계기 중 하나였다. 국제금융센터는 ADR 상장을 앞두고 이뤄진 선물환 매도가 원달러 환율 하락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9월 중순 미국의 긴축 우려가 커지면서 반등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 압력이 지속되고 경제활동도 견조하다고 판단해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올려 연 3.75~4.00%로 조정했다. 한국 기준금리 연 3.00%와의 격차는 미국 금리 상단 기준 1.00%P로 벌어졌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환율은 9월 18일 장중 1390.7원까지 되올랐다. 하지만 반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9월 말 기준 1352.8원으로 낮아진 뒤 지난 8일에는 같은 시각 기준 1338.5원까지 내려왔다.
환율을 끌어 올릴 대외 압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8일 국내 외환시장 거래 시간대에 102.288을 기록하며 상승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도 7일 장중 5.36%까지 올라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외국인은 7~8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5조 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런 여건에도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국내 달러 공급이 환율 상승을 억제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9월 수출은 1209억 4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83.5%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은 603억 달러로 263% 늘었고, 무역수지 흑자는 498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8월 경상수지 흑자도 461억 1000만 달러에 달했다.
기업의 달러 매도도 상반기부터 늘어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남준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금융 민간기업의 올해 2분기 현물환·선물환 합산 달러 순매도액은 1096억 5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94억 7000만 달러의 3.7배였다. 하반기에도 반도체 수출 호조로 비슷한 여건이 형성됐다.
이에 더해 하반기에는 대규모 배당과 자사주 매입 계획이 원화 자금 수요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SK하이닉스는 8월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 약 40조 원어치 자사주를 장내에서 사들여 소각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약 30조 원의 3분기 현금배당 계획을 발표했으며, 구체적인 내용은 10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한다. 삼성전자는 이와 별도로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약 15조 원 매입도 의결했다.
8월에는 법인세 납부 수요도 겹쳤다. 한국투자증권은 당시 보고서에서 반도체 기업의 이익 증가 등을 반영해 법인세 중간예납 규모가 예년 10조~17조 원에서 약 46조 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세금 납부용 원화를 마련하기 위해 환율이 반등할 때마다 달러를 나눠 파는 수요가 붙을 것으로 봤다.
다만 원달러 환율을 다시 끌어 올릴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당장은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이 관건이다. 연준이 7일(현지 시간) 공개한 9월 회의 의사록에서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연말까지 추가 인상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했다.
향후 결정은 경제지표에 달렸다는 입장인 만큼, 14일 발표되는 미국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27~2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환율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국내 달러 공급이 이런 상승 압력을 계속 억제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10월 전망에서 수출 호조가 원화 가치를 뒷받침하겠지만, 수출기업의 달러 환전 수요가 이미 환율에 상당 부분 반영돼 추가 하락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달러 공급을 이끌어온 반도체 호황의 지속 여부가 중요하다. KB국민은행은 반도체 업황이 하강기에 들어서면 수출로 유입되는 달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내 투자수익률 저하로 해외투자가 확대되면 달러 수요는 늘어나 환율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최근 국정감사를 앞두고 야당에서는 정부가 환율을 낮추기 위해 주요 수출기업들에게 환전을 강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 현장에서 “기업의 환전을 직접적으로 독촉하거나 경영 활동에 개입하진 않는다”라며 선을 그었다.
박동해 기자 easts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