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현정 경제부 차장
고용 창출 경제주체 하나둘 부산 떠나
쟁취로 권리 지키는 지방 삶 고단 호소
가덕신공항 등 전재수 시장 역할 기대
최근 일주일 사이 무려 세 사람으로부터 부산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한 사람, A는 전문직이다. 꽤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대표이기도 하다. 그가 일을 해서 버는 돈도 많지만, 10년 가까이 주식과 코인 등에 투자해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지방 사람들도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서울 모처에 꽤 비싼 집을 샀다고 했다. 집만 샀나 했더니, 가족들은 이미 이주를 했다고 했다. 정부가 ‘똘똘한 한 채’를 때려잡기 위해 ‘비거주’를 코너로 몰아 넣으니 어쩔 수 없이 가족들만 갔나 보다 했는데, 본인도 곧 서울에 간다고 했다.
또 한 사람. B는 부산에서 사업을 일으켜 성장했다. 수출이 많이 되고, 사업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도 곧 부산을 떠나려 한다. 부산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산에 본사가 있고 서울에 사무소가 있는데, 일이 서울에만 몰려 할 수 없이 그도, 회사를 이어받을 아들도, 직원들도 다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정말 부산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본사를 부산에 남겨두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방 건설업계가 고사 위기다. C는 건설업계의 꽤 큰 회사 대표다. 오랜만에 연락을 했더니 그도 부산을 떠날 채비를 한다고 했다. ‘대표님도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산에 일감이 없어 회사가 날아가 버릴 상황이니,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않느냐”며 어떻게라도 살아남으려면 수도권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세 사람 다 생산성이 높고, 고용을 창출하며, 소비로도 부산 경제에 도움을 주던 이들이다. 고작 몇 명의 사례로 호들갑을 떨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 사이 지역에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경제주체들이 너도나도 서울로 간다는 얘기를 들으니, 부산 시민으로서 열패감이 들었다. 이 밖에도 기자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산에서 짐을 싸고 있을까.
“해양수도 되기도 전에 다 떠난다.” 부산의 한 업체 대표가 한 말이다. 또다른 기업인은 수도권에 맞서 하나하나 투쟁하고, 쟁취하고, 악다구니를 써야만 최소한의 권리라도 지킬 수 있는 지방민의 삶이 고단해, 붙들고 있던 부산에 대한 애정을 그냥 놓아버릴까 고민한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업체를 인수해 부산에서 사업자 등록을 하고 부산에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자부심과 뿌듯함 대신 회의감이 생겨나고 있는 게 무섭다고 했다.
전재수 부산시장께 당부드린다. 북극항로, 북항을 통한 해양수도 만들기에도 전력을 쏟아야 하지만, 부산 다른 곳으로도 눈을 돌려 주길 바란다. 시민들은 축포가 쏟아지는 축제 현장보다, 불편하고 갑갑한 현장에서 ‘해결사’로 나서 주는 부산시장을 기대한다.
당장 가덕신공항이 또 지연될 위기다. 정부가 공사비 상승분 현실화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2035년 개항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정부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시민들은 청와대, 국회와 ‘같은 편’인 시장의 역할을 기대한다.
센텀2지구 조성과 앵커기업 유치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센텀2지구는 제조업 중심의 지역 경제를 첨단산업과 지식서비스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해 추진되는 대형 도시 프로젝트로, 부산의 미래 먹거리다. AI·로봇·첨단해양·지식서비스의 중심축이 되려면 어떤 기업을 어떻게 유치할지에 대한 구상이 있어야 하고, 지금부터 뛰어야 한다. 보상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풍산의 부지 이전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유례없는 대규모 악성 미분양과 부동산 거래절벽도 지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대출이 안 되거나 집이 팔리지 않아 거주지 이전을 할 수 없으며, 매매 물건만 수두룩하고 팔리지가 않으니 전세 물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가 이뤄질 리 없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지역 건설사의 위기는 부산 경제 순환고리에도 균열을 가져오는 만큼, 지방에 특화된 부동산 대책 마련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스웨덴 말뫼가 조선업 몰락 이후 친환경·지식 기반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데에는 코펜하겐을 연결하는 외레순 대교 개통과 Bo01이라는 첨단 단지로 청년과 기업을 끌어모은 지방정부의 역할이 컸다.
철강업의 쇠퇴로 일자리가 반토막이 나고 청년들이 엑소더스처럼 빠져나갔던 미국 피츠버그도 카네기멜런대(CMU)와 피츠버그대가 인재 공급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지자체와 민관학 협의체가 지역 내 인재 정착 경로를 구축하면서 로봇·AI 첨단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부산의 더 많은 경제주체들이 짐을 싸기 전에, 부산시가 현장의 비명을 귀 기울여 듣고 응답해야 할 때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