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한미동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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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U Jean Monnet 석좌교수

미국 국제적 역할의 급격한 변화로
안보·경제 손익계산서 달라진 현실
독자 대응역량·협력관계 구축 시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 진영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1948년 베를린 공수작전과 1950년 한국전쟁이다.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 육상 교통로를 봉쇄하자 미국은 1년 3개월에 걸친 대규모 공수작전으로 서베를린 주민들에게 식량과 연료를 공급했다. 미국은 소련과의 군사충돌 위험에도 서베를린을 포기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도 미국은 유엔군의 주축으로 참전했다. 이는 미국이 자유 진영 안보를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연결했음을 보여준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이러한 역할은 지속되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위협하자 미국은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이듬해 걸프전에서는 다국적군을 주도하여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이후에도 미국은 걸프 지역에 군사적 거점을 유지하며 중동의 안보와 에너지 수송로의 안정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최근 중동 상황은 미국의 안보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교통이 혼란에 빠졌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연안 항만과 수에즈 운하를 연결하는 수송로의 중요성이 커졌다.

그 중심에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있다.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이 해협은 국제 해상교통의 전략적 요충지다. 그런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해협 주변의 거점을 장악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정부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탈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시설과 주요 도시를 공격하고 있다. 두 해협이 동시에 불안정해질 경우 세계 에너지 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예상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대응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랫동안 미국의 핵심적인 중동 안보협력국이며, 미국은 지금도 이 지역에 군사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강력한 요청에도 직접적인 지상군 투입을 주저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대규모 지상군을 파견했던 미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이나 NATO 회원국과 달리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국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상황은 긴밀한 안보협력 관계조차 위기 발생 시 군사적 지원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 전략에도 반영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안보 협력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러시아와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하며, 이란과도 관계 개선을 추진해 왔다.

오늘날 국제정치에서 동맹과 협력은 모든 분야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안보 분야의 협력국이 경제적으로는 경쟁국이 될 수 있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국가와도 무역과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동맹과 적대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만으로는 복잡해진 국제질서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국가안보의 핵심 기반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언제나 한국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강화하면서도 독자적인 안보역량을 확충하고, 유럽과 아시아 및 중동 국가들과의 협력을 다변화해야 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혼란은 중동의 군사적 충돌이 한국의 에너지 수급과 산업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가안보를 군사적 위협뿐 아니라 에너지와 공급망, 경제안보까지 포괄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동맹의 의미가 변화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행동을 보장하지 않으며, 긴밀한 협력관계 역시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따라서 변화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동맹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

유연한 사고란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국가의 장기적인 이익을 지켜나가는 능력이다. 베를린 공수작전에서 걸프전을 거쳐 오늘날 바브엘만데브 해협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할 변화는 이러한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결국 동맹의 강도는 과거에 무엇을 해주었는가보다 현재 무엇을 함께 지킬 의지가 있는가에 달려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동맹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그 한계를 이해하고, 독자적인 대응역량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유연하고 현실적인 외교적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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