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정 분권은커녕… 3년 새 지방 재정 비상금 반 토막
세수 줄고 매칭 사업 부담 늘어 고사 직전
미래기금 통한 사후 지원보다 완충 여력을
부산시청 전경. 부산일보DB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가 재정 충격에 대비해 적립하는 재정 비상금이 최근 3년 새 반 토막났다. 비수도권 14개 광역지자체의 재정안정화계정 잔액이 2022년 말 7546억 원에서 2025년 말 3467억 원으로 4079억 원(54.1%)이 감소한 것이다. 재정안정화계정은 세입이나 결산상 잉여금 등을 적립해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가 발생하거나 지방채 원리금을 상환할 때 활용하는 재원이다. 부산은 2023년 말 637억 원이었지만, 현재 잔액이 9억 원대로 급감했다. 울산은 2022년 말 1008억 원에서 2025년 말 550억 원으로 줄었고, 경남은 지난 3년간 1억 원대에 그쳤다. 지방의 재정 충격 대응 여력이 빠르게 약화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지방 곳간은 줄어드는 반면 지방의 의무 지출은 늘고 있다. 국고보조사업에 지방비로 함께 부담해야 하는 대응지방비는 2022년 36조 4000억 원에서 올해 44조 9000억 원으로 8조 5000억 원이 늘었다. 같은 기간 사회복지 분야 대응지방비는 18조 2000억 원에서 20조 9000억 원으로, 교육 분야는 1조 4000억 원에서 4조 5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사업을 정하면 지방이 매칭해야 하는 돈이 늘면서,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쓰거나 쌓아 둘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방의 주요 자주재원인 취득세가 감소한 데다 중앙정부 사업의 매칭 부담이 겹치면서 지방재정은 고사 직전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미래대응기금 도입을 반영하면서 초과 세수로 인한 지방교부세 증가분이 줄어들게 됐다. 기금에 넣는 세금을 교부세 계산 대상에서 빼기 때문이다. 내년도 지방교부세는 현행 산식을 유지했을 때 100조 2000억 원보다 약 30조 5000억 원 적은 69조 7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지자체가 애초 받을 수 있던 몫에서 30조 원 넘게 빠지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용도를 자율적으로 정하는 교부세 대신 목적성 기금으로 재원을 배분하면 지방재정의 자율성이 크게 떨어질 우려가 크다. 세수가 줄 때는 지방도 교부세 감소를 감수했는데 세수가 크게 늘자, 중앙정부가 먼저 기금으로 떼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이 교부세의 변동성을 줄이고 재정 여건이 나빠질 때 지방을 추가 지원하는 안정화 장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방 재정 비상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지원 규모와 시기를 중앙정부가 기금으로 결정하는 구조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지방의 재정 대응 능력마저 정부 판단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방재정의 탄력성을 무너뜨리고 재정 분권에 역행하는 일이다. 부산 남구청이 지난 7월 재정 비상사태를 선언할 정도로 많은 지자체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중앙정부는 사후 지원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스스로 위기에 대비할 수 있게 재정 완충 여력을 확보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