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나는 거예요?”…영·일 ‘비상 대비’ 권고에 화들짝[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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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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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과 일본 정부가 식량과 식수를 포함해 최소 3일 동안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물자를 비축하라는 권고를 국민들에게 내렸다.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최근 영국과 일본 정부가 식량과 식수를 포함해 최소 3일 동안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물자를 비축하라는 권고를 국민들에게 내렸다.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무언가 큰 위기가 오고 있는 것 아니에요?”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전쟁이나 기상 재난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표출하는 게시물이 잇따랐다. 이 일은 영국과 일본 정부가 기상 이변 및 안보 위기 상황에 대비해 비상식량이나 방재용품을 미리 준비하라는 권고를 연이어 내놓은 게 발단이 됐다.

외국 정부의 갑작스런 비상 물자 비축령이 평화로운 일상에 익숙하던 우리 국민에게도 다가올 재난이나 전쟁을 암시하는 전조 아니냐는 위기감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중동 갈등, 글로벌 사이버 위협 같은 국제 정세와 맞물리면서 음모론적 해석까지 낳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같은 조치들은 특정 사태에 대비한 움직임이라기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각국 정부가 국가 안보·비상 인프라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국민적 안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캠페인에 가까워 보인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홈페이지에 재해시 각 가정에 비축해야 할 식품 관련 가이드를 안내하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 홈페이지 캡처 일본 농림수산성이 홈페이지에 재해시 각 가정에 비축해야 할 식품 관련 가이드를 안내하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 홈페이지 캡처

영국·일본의 ‘비상 대비’ 지침, 왜?

영국 내각부는 지난 22일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공식 발표했다. 이 캠페인은 국민들이 최소 3일 동안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물자를 비축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비상 키트 체크리스트를 포함한 정부 웹사이트도 새로 개설됐다. 이번 캠페인은 기후 위기의 심화, 고도화된 기술 인프라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 갈수록 노골화되는 적대국의 사이버·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영국 정부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 캠페인이 직접적인 위협을 상정하고 진행되는 성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 측 설명에 따르면 비 레디 캠페인은 각 가정의 비상 대비 태세를 높이기 위한 3개년 계획의 첫 시작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8월에도 통조림 등 상온 보관 식품을 가정마다 비축하라는 방침을 권고한 바 있다. ‘캠페인’ 용어부터 국민들의 과한 우려를 걱정한 선택으로 보인다.

여기에 일본까지 가세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지난 26일 TV에 출연, 대지진 및 복합 재난 상황에 대비해 최소 3일 치, 길게는 일주일 치에 달하는 식량과 식수를 가정마다 비축해 달라고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다음 달 2일 방재청 출범에 맞춰 전국 지자체와 국민을 대상으로 재해 대비를 강화하는 ‘긴급 요청’도 할 예정이다.

일본도 정부의 비상 식량 비축 권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도 난카이 해곡 대지진, 수도 직하지진, 지시마 해구와 일본 해구 인근의 거대 지진, 후지산 분화 등을 대비 대상으로 언급하며 구체적 위협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에 선을 그었다.


영국과 일본 정부가 연이어 기상 이변이나 안보 위기에 대비해 최소 3일 치의 식수와 식량을 준비하라는 권고를 국민들에게 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이스라엘군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엘발라 난민촌 모습. AFP연합뉴스 영국과 일본 정부가 연이어 기상 이변이나 안보 위기에 대비해 최소 3일 치의 식수와 식량을 준비하라는 권고를 국민들에게 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이스라엘군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엘발라 난민촌 모습. AFP연합뉴스

“불안하다” vs “미리 준비”…엇갈린 반응

정부의 갑작스러운 조치에 영국·일본 현지 국민들은 대체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캠페인 발표 직후 영국 온·오프라인 마트에서 비상 식품과 용품 주문이 일시적으로 늘긴 했지만 사재기 같은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자연재해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없진 않지만 대체로 정부가 안내하는 지침을 서로 공유하거나 ‘이 기회에 비상 대비를 해 두자’는 의견이 오가고 있다.

국내에도 이런 소식이 퍼지면서 초반엔 ‘3차 대전이 터지나’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등 다소 과한 반응들이 퍼졌지만 이후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소식들과 챙겨야 할 비상 물품 목록 등이 공유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 소식엔 더 민감한 반응이 나오는데, 일본 여행을 앞둔 사람 사이에 일본 재해 정보를 알려주는 앱 정보 공유 등이 이뤄지고 있다.

각국 정부도 국민들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도록 유도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정부의 경우 비상식량이나 비상용품을 한 번에 사지 말고 평소 장을 볼 때 조금씩 여유 있게 구비해 두도록 안내하는 등 신경을 쏟고 있다.


최근 유럽과 북미 각국 정부들은 국가적 재난 대응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 기후 위기나 재난 발생시 가정과 기업 차원의 대응을 강조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수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위해 서울의 한 학교에 설치된 임시 대피소. 연합뉴스 최근 유럽과 북미 각국 정부들은 국가적 재난 대응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 기후 위기나 재난 발생시 가정과 기업 차원의 대응을 강조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수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위해 서울의 한 학교에 설치된 임시 대피소. 연합뉴스

유럽·북미, ‘개인 대응’ 강조 흐름

사실 이런 움직임은 영·일 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과 북미 국가 사이에는 최근 수년간 국민 개개인이 위기 초기 단계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침을 강화해왔다.

EU 내에서도 높은 대비 태세 수준을 갖춘 것으로 꼽히는 스웨덴은 민방위청(MSB)을 통해 모든 가정에 상세한 위기 대응 가이드북을 배포하고 안보 환경 변화에 맞춰 내용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스웨덴에선 최소 7일 이상 외부 지원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식수, 비상식량, 대체 난방 도구, 자가 발전 조명 기구를 가정에 상시 갖추도록 권고한다. 독일도 유사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으며 식량·식수 비축 기간을 10일까지 설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전국적 재난 대비 캠페인인 ‘레디 캠페인’을 상시 운용하고 있다.

각국의 재난 대비 조치들은 ‘비상시 초기 며칠 동안 개별 가정과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는 철저한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대규모 재난으로 국가 인프라가 마비되거나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면, 초기 골든타임 동안은 국가적 차원의 행정 지원이나 물자 배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후변화와 국제 정세 불안이 일상화하면서 민간 영역의 방재 비축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영국 정부가 최근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배포한 체크리스트. 영국 비 레디 캠페인 홈페이지 캡처 영국 정부가 최근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배포한 체크리스트. 영국 비 레디 캠페인 홈페이지 캡처

가정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은?

각국 정부와 재난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필수 물품 목록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인당 하루 최소 2L의 식수와 조리가 필요 없는 상온 보관 식품은 필수 구비 물품이다. 다만 한꺼번에 마련하기보다 평소 구입하는 물품을 조금 더 비축하고, 쓴 만큼 다시 채우는 ‘순환 비축’ 방식이 권고된다. 손소독제, 물티슈, 마스크, 상비약 등 구급약품 역시 빠지지 않는 물품이다.

전기와 전자제품에 워낙 익숙해진 시대여서 의외로 전기가 끊어질 경우에 대한 대비가 부족할 수 있다. 건전지 라디오, 휴대용 보조배터리, 손전등, 대체 난방·조명 기구 등이다. 특히 이번에 영국·일본 정부 권고 물품에 현금(지폐와 동전 혼합)이 포함됐는데, 사이버 위협 증가로 현금자동인출기나 온라인 뱅킹 불통 우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상용품은 현관 근처나 접근이 쉬운 곳 등 집안의 한 곳을 정해 모아두고, 정전이나 야간 불 꺼진 상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보관하라는 내용도 권고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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