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나뭇잎이 떨어지는 까닭
박진규(1963~)
가을날 나뭇잎이 떨어지는 까닭은
나무의 강물이 멈추기 때문이라고
어느 늙은 나뭇잎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나무 안에도 강이 있어
점점 차가워지는 강이 흐르고 있어
얼기 전에 몸을 닫아야 하는 나무의 사연을,
나뭇잎으로 가는 줄기의 물길 다 끊어
말라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나무의 사연을
어느 늙은 나뭇잎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세상 곡기 다 끊고 깡마른 저 겨울 裸木
새로운 봄이 되는 적빈(赤貧)의 사연을
어느 붉은 나뭇잎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시집 〈풀꽃 친구〉(2026) 중에서
익숙한 것들이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놀라움과 신비스러움을 우린 종종 놓치곤 합니다. 살기 위해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 나무처럼 내 안에도 흐르는 강물이 있겠지요.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날 줄 아는 내려놓음의 세계, 이 가을에 나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곰곰해집니다.
기다리는 바람이 없어 나뭇잎을 떨구지 못할 때 나무는 스스로 몸을 흔들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 얘기도 시인의 늙은 나뭇잎이 들려준 것이었을까요. 나뭇잎으로 가는 물길을 끊어야 하는 마음, 세상 곡기를 끊기 시작한 가을 나무처럼 가을엔 좀 가난해져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단풍이며 낙엽이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몸부림 같은 것이라니 이번 가을은 좀 적적해도 괜찮겠단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가고 오는 시절도 여행이어서 낯설어도 좋을 만남과 이별 사이에서 서성여보는 것도 좋을 가을입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