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몸은 어디까지 예술인가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현존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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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 The Artist is Present, 2010, MoMA, 사진 Andrew Russeth, Wikimedia Commons, CC BY 2.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The Artist is Present, 2010, MoMA, 사진 Andrew Russeth, Wikimedia Commons, CC BY 2.0.

여자는 꿀 1㎏과 포도주 1L를 들이켠다. 유리잔을 깨뜨리고 면도날로 자신의 배에 오각별을 새긴다. 상처에 피가 흐른다. 이어 등에 채찍을 휘두르고 얼음으로 만든 십자가 위에 눕는다. 천장의 난방기는 배의 상처를 향해 열을 내뿜고 등은 얼어간다. 몸의 고통은 더해진다. 이 고통은 연기가 아니다. 마침내 위험을 감지한 관객들이 그녀를 얼음 위에서 끌어내면서 퍼포먼스는 끝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1946- )가 1975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선보인 ‘토마스의 입술’이다. 여기에는 그녀가 성장한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도 스며 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오각별과 세르비아 정교회를 연상시키는 십자가가 한 몸 위에서 충돌한다. 꿀과 포도주, 피와 채찍질, 십자가와 상처는 성찬과 순교, 죄와 구원의 이미지를 불러낸다.

몸은 이념과 종교, 개인의 기억이 충돌하는 장소이며, 상처 입은 몸은 정치와 종교가 인간에게 새겨온 폭력과 희생의 역사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상처 입은 몸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다. 실제 작가가 피를 흘리고 위험해지자 관객들이 개입한다. 이 순간 작품과 현실, 보는 자와 행위를 하는 자의 경계가 무너진다. 에리카 피셔-리히테가 퍼포먼스에서 강조한 ‘수행적 전환’도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은 미리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 행위자와 관객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의 ‘더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The Artist Is Present)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전시장 한가운데 앉아 맞은편 관객과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관객은 원하는 만큼 그 자리에 머물 수 있었다. 이 퍼포먼스에서 남는 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 앞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곧 ‘지금 여기’의 현존이다.

21세기의 아브라모비치는 몸을 타자와 관계를 맺는 매개로 바꾸었다. 퍼포먼스의 중심이 고통받는 몸에서 서로 바라보며 함께 존재하는 관계로 이동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반세기 전 출발한 아브라모비치가 다시 우리의 동시대인이 된다.

영상과 이미지가 무한히 복제되고, 인공지능이 가상의 얼굴과 몸까지 만들어내는 시대에 아브라모비치는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매체를 되돌려놓는다. 살아 있는 몸, 그리고 다른 몸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예술은 더 이상 대상만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의 문제가 된다.

몸은 어디까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여기서 작가는 관객에게 되묻는다. 한 인간의 몸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놓일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가? 관객이 더 이상 바라보기만 할 수 없는 순간, 몸은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예술은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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