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도요토미
2021년 7월 일본 도쿄에서의 일이다. 당시 도쿄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1년 늦게 ‘2020 도쿄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이 도쿄 시내 선수촌 외벽에 건 현수막이 논란이 됐다.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상유십이’(尙有十二-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의 내용을 본뜬 문구였다.
일본 언론은 정치적 메시지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극우 단체는 선수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우리 선수단은 현수막을 내렸다.
2026년 일본 나고야에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식 상황이 벌어졌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선수촌 환영 행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등장시킨 것이다. 조직위는 선수촌 환영 행사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전국시대를 상징하는 3명을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전국시대를 거쳐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모두 현재의 아이치현 일대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아이치현과 나고야시가 관광·문화 콘텐츠로 적극 활용하는 인물이다. 도요토미는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당사자다. 전란은 7년간 이어졌고, 당시 수많은 조선 백성들은 일본의 침탈에 숨을 거뒀다.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임진왜란은 한중일 3개국으로 확산됐고, 우리에겐 아픈 역사로 각인됐다.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특정 역사적 인물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의도는 없었다. 개최지인 아이치·나고야의 지역 문화와 관광을 소개하기 위한 행사였다”고 해명했다.
조직위 해명이 무색하게 나고야시의 한 공원에 도요토미를 소재로 한 포토존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관람객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갑옷 모양의 패널 뒤에 서서 일본 전국시대 무장(武將)이 된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된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을 국제대회에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받은 나라의 선수단 공식 환영행사에 전범을 앞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포토존까지 운영하는 것은 국제대회 주최국으로서 예의가 아니다. ‘상유십이’ 현수막을 두고 시위까지 벌였던 일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