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온과 기억의 궤적…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건네는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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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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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 ‘제의를 품은 신체들’ 31일 폐막
애착 인형과 인간 사이 오간 생명력 흔적 추적
경계 허무는 ‘회화적 신체’와 ‘영적 업사이클링’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세 살 때부터 간직해 온 애착 인형 '마이클'을 소개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세 살 때부터 간직해 온 애착 인형 '마이클'을 소개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타인과 나누었던 온기는 사람이 떠난 뒤 어디로 흘러갈까. 4년 전 불과 재의 강렬한 스펙트럼으로 ‘창조와 파멸’을 사유했던 태국 출신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40)가 이번에는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체온’과 ‘기억’을 들고 다시 부산을 찾았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Post Ritual Bodies)’은 오는 31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비인간 신체’들과 그 안에 쌓인 순환이다. 조부모가 병상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두었던 토끼 인형부터 작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작고 낡은 곰 인형 ‘마이클’, 그리고 조카의 인형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는 애착 인형들이 작품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작가는 이 살아 있지 않은 존재들을 가리켜 “부드러운 육체들(soft bodies)”이라 부른다. 현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 인간으로 성장하며 주어지는 부드러운 육체들을 통해 우리는 돌봄을 배우고 불안을 다독인다”며 “이 인형들은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천사들인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설치 전경. 안천호 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설치 전경. 안천호 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매체의 다층적인 레이어다. 작가는 가족들이 인형을 품에 안을 때 전달되는 체온을 군용 등급 열화상 카메라로 포착해 ‘열화상 초상화’를 만들었다. 체온이 인형으로 옮겨가는 순간의 열 신호는 밝은 빛과 색으로 포착된다. 이 영상은 콘서트용 투명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투사된 뒤, 다시 스크린 표면에 사진으로 인화돼 ‘회화적 신체’(paint-body)로 재구성된다. 본래 이미지를 투사하는 도구인 스크린은 여기서 투사된 영상을 받아내는 ‘피부’ 역할을 수행한다. 태국어에서 영화(Film)와 피부(Skin)가 같은 소리(Nang)를 내듯, 회화 자체가 기억을 품은 하나의 신체가 되어 영상을 스크린에 기록한다. 작가는 이를 일종의 ‘영적 업사이클링’(Spiritual Upcycling)이라 칭한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전시장 뒤편에는 태국에서 농작물을 태우고 남은 재로 조각하고, 그 위로 직접 쓴 기도문을 새긴 바닥 파편들이 놓여 있다. 농작물 재를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정화와 순환이라는 제의적 의미와 함께, 최근 태국 전역을 위협하는 대기 오염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역설적으로 환기한다.

“흙에서 흙으로/ 우리에게 재탄생을 허락하소서/ 끝내 실체화되지 못한 존재들에게/ 모든 소리를 걸러낼 육신을 내리시고/ 그들의 모든 노래가 아름답기를…”

불에 타 없어진 잔재가 아니라 이루지 못한 소망을 담아내는 매개로서의 재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 역시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사람들의 재 위에 있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물질이 타올라 공기 중으로 풀어져 나가는 과정 역시 땅과 하늘을 잇는 순환의 일부가 된다.

사람만 신체를 갖는 것이 아니다. 낡은 인형도, 빛을 기록한 스크린도, 불타고 남은 재도 시간을 품는다. 불과 재를 거쳐 인간과 사물이 나눈 묵직한 온기로 확장된 이번 전시는 열흘 후면 막을 내린다. 지나쳐온 소중한 존재들의 온기를 다시금 감각하고 싶다면 발걸음을 서두르는 게 좋겠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가 오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은영 기자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 현재 방콕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2009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미술학사, 2012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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