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성역화가 부른 ‘암살자들’ 역풍…갈등 부추기는 ‘내로남불’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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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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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자들’ 논란 가열, ‘논쟁’ 넘어 진영 대결로 비화
보수 야권 5.18, 탱크데이 등 여권 역사 성역화 정조준
유불리 따라 ‘표현 자유’ 이중 잣대 여야 갈등 악화 주범
유족 박지만 씨 “아버지 아는 기회” 성숙한 태도 눈길


지난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화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 자택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제작사와 배우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응이 점입가경이다. 과거 문화 콘텐츠의 역사 왜곡 논란이 ‘논쟁’ 수준에서 정리됐다면, 이번에는 상영 금지 실력 행사, 배우들에 대한 위협 등 극단적 진영 대결 행태로 비화하고 있다. 여권의 지나친 ‘역사 성역화’에 대한 역풍이라는 지적과 함께 정치권의 ‘내로남불’ 행태가 사태 악화의 주범이라는 비판 또한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후 당력을 총동원해 판을 키우고 있다. 장동혁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지난 5일 충북 옥천군의 육 여사 생가로 총출동해 이번 논란을 “문화전쟁, 역사전쟁”으로 규정하면서 “역사를 왜곡해서 정치적 이득을 얻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국민이 맞서 싸워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7일 국정감사장에서도 상영 중단과 제작진의 증인 소환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참에 ‘좌편향’된 문화계를 반드시 손 보고 말겠다는 태세다.

보수 진영이 이처럼 총궐기에 나선 것은 영화 자체의 사실 왜곡 문제에 더해 그 동안 여권이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일체의 비판이나 이견을 허용치 않으려는 ‘역사 독점’ 행태를 보여온 데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영화가 쟁점이 된 이후 야권에서 “‘5.18은 북한간첩이 선동한 폭동’이라는 영화를 만들어도 되느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뒤에 권양숙 여사가 있다고 암시하는 영화는 어떠냐”는 말들이 쏟아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여권은 그 동안 “역사 문제를 과잉 사법화해 오히려 역사 전쟁을 부추길 것”이라는 역사학계의 우려에도 ‘5·18 왜곡방지법’을 밀어부쳤고, 고의성 여부가 명확치 않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은 대통령까지 나서 패륜 기업으로 몰아세웠다. 또 배재고 학생들의 철 없는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폭력”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기도 했다. 한 야권 인사는 “민주당 정부의 광기에 가까운 역사몰이에 부글부글하던 참에 ‘암살자(들)’이 반격의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불리에 따라 이중 잣대로 이 사안을 대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오히려 역사 문제에 대한 진영 간 대립만 키우는 요인이다. ‘암살자(들)’을 향한 비판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목청을 높이는 민주당은 지난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영화 ‘건국전쟁2’의 감독을 국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불러 제작 경위 등을 따진 바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출연 배우를 향해 ‘북한상’이라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퍼부으며 이번 논쟁에 가장 격렬하게 참전한 주진우 의원은 ‘건국전쟁 2’ 논란 당시에는 “역사나 문화는 권력을 잡은 자가 재단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도 존중하지만, 그러나 영화 상영을 권력이 막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문제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어느 편에 유리하느냐’라는 것이다. 실제 ‘국제시장’, ‘서울의봄’, ‘건국전쟁’ 등 근현대사의 민감한 부분을 다른 영화들은 그 때마다 정치권 진영 대립의 ‘땔깜’으로 활용돼왔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박지만 EG 회장의 최근 발언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박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 “배우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우리 영화판이 그렇게 만들었지”라면서 “오히려 이번 논란으로 더 많은 국민들이 아버지 박정희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으로서 영화의 왜곡된 표현에 가장 분노할 수 있는 위치지만, 정치권의 섣부른 대립에 편승하기보다는 갈등을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작 유족은 갈등 확산을 경계하는데, 정치가 이를 부추기면서 강성 유튜버나 다름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이쯤 되면 정치는 문화판에서 좀 빠져주는 게 그나마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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