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오직 모를 뿐'으로 되새기는 인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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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오염된 마음 초기화 재설정 한다면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요산의 일갈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까

얼마 전 부산항 북항을 찾은 흑상어 한 마리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부캉이’라는 애칭까지 붙여주며 사람들의 관심이 폭증하였고, 준공 이후 몇 년 동안 찾는 이 별로 없이 먼지만 날리던 경관 수로에는 ‘부캉이’를 직접 보려고 일부러 찾아온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인과 가벼운 술자리를 겸해 저녁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는 ‘부캉이’를 딴 상표 로고가 찍힌 술병이 나와, 기업의 발 빠른 행보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몇 주 동안 빠져나가지 못해 엇비슷한 동선만을 오가던 ‘부캉이’를 두고 사람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많은 이들이 북항에 머물다 추워지면 자연스럽게 나갈 테니 굳이 억지로 유인해서 내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을 내었던 것 같다. 물론 ‘까짓 상어 한 마리 때문에 극성이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이들도 적지 않았다.

‘부캉이’ 출현을 두고 많은 이들이 설왕설래하는 중에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쿠아리움 같은 대형 수족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상어를 일부러 보려고 먼 곳에서까지 찾아오는 사람의 마음이었다. 수족관에 갇히거나 진열된 ‘생물’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물고기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의 심리 속에 들어있는 호기심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 경로가 궁금해진 것이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물건이나 동물을 보고 눈과 귀를 쫑긋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스펙터클한 것에 쉽게 오감을 곤두세우는 사람이라면 늘 한결같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만큼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도 없다. 흔히 ‘다람쥐 쳇바퀴’로 비유되곤 하는 판에 박힌 나날의 일상에서 인간의 품격과 가치를 잊지 않으면서 삶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하게 각인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하나 발견한 것이 있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조금은 낯설고 엉뚱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요즘 내 일상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모른다’는 ‘안다, 모른다’ 할 때의 ‘모른다’와 다르다. 다시 말해 인식 범주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을 가만히 내려놓는 일과 가깝다. 물질 에너지와 에고(ego)의 작용으로 살게 되는 인간의 삶에서 정신을 차리거나 잠깐이라도 순수한 마음자리를 구경하는 일만큼 값진 일도 없다. 사실 나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주 평범한 의식과 상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무심코 어떤 계기를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 계기는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원숙한 길을 찾게끔 추동한다. ‘부캉이’ 사태를 보면서 에고의 망상이나 준동으로 손쉽게 ‘룰’을 어긴다든지 윤리적 테두리를 벗어나는 짓을 일삼고도 오히려 떳떳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지난주 성황리에 끝난 제29회 요산김정한문학축전에 모인 숱한 작가들과 시민들의 표정과 몸짓을 떠올린다. ‘문학’이 주된 방석이었지만, 그 방석에 앉은 많은 이들의 삶에서 참되고 가치 있는 존재의 지침과 잣대는 어떻게 작용하며 또 어떤 방식으로 찾아오는지 잠깐 생각했다.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일갈로도 알려진 작가 요산 김정한(1908~1996)은 평생을 정의와 양심을 위하고 참된 인간의 길을 걷거나 걸으려는 인물의 삶을 창작의 주요한 모티프로 삼았다. 그가 말한 사람은 아마도 욕망과 오감으로 뒤범벅된 채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 같은 일반 존재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아닌 ‘인간’ 즉,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품으면서 정신적 보편 법칙을 구현해야 하는 ‘사람’만큼 ‘사람다운’ 말과 행동을 당위로 여기는 존재도 없다. 그러니까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말은 곧 사람으로 나온 자연과 신성의 섭리 그대로 발현하면서 자신의 둘레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상통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흔히 ‘금수만도’ 못하다고 말한다. 짐승이 사람과 다른 점은 무엇이 도리이고 무엇이 예의인지 인지하는 정신 기능이 거의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아주 잠깐 그치는 점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덕과 성품을 본래 가지고 태어나지만 에고에 달라붙은 현상계의 온갖 분별심과 이원적 의식의 때가 이를 가려버려 무명(無明)의 바다를 떠돌며 헤매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 이는 복잡한 인연의 관계와 생각으로 점철되어 오염된 마음을 잠시 초기화해서 재설정(reset) 하는 일이다. 초기화 상태에 머물다 잠시 되돌아온 일상에서 현실을 바라보면, 요산 선생이 말한 인간의 길이 참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그 속내가 훤히 보일 법도 하겠다. 이해관계로 따지는 선의의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숙이 울리는 양심의 명령으로 행할 수밖에 없는 선의의 실천을 요산 선생은 주문하지 않았을까. ‘부캉이’도 떠난 깊은 가을에 떠오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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