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5 목요일
[사설] 부산오페라하우스 라 스칼라 공연 취소, 숙제 남겼다
출발점부터 격렬한 논란과 갈등을 불렀던 퐁피두센터 부산분관 건립 사업과 부산오페라하우스 라 스칼라극장 초청 공연에 대해 ‘추진하지 않는다’는 부산시 결론이 나왔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14일 “퐁피두 분관 건립을 중단하고, 라 스칼라 초청 공연도 추진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퐁피두 사업은 이기대 자연환경 보존, 계약상 부산 권리와 공공성 확보 부족, 장기 재정 부담 불확실성, 지역 예술계와의 공감대·동반성장 부족 등을 중단 이유로 들었다. 라 스칼라 공연 취소는 시 재정 부담, 부산에 남길 성과 불확실, 공연장 완성도 우려 등을 감안한 결정이라는 설명이 따랐다. 부산 문화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는 전 시장 권한이자 책임인 만큼 결론을 존중한다. 이번 결론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했다. 전 시장은 취임 첫날 “백지화해야 할 사업이 있더라도 시민 참여와 이해관계자, 공직자들 의견을 충분히 듣고 투명한 절차를 거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퐁피두 사업은 시 외부 인사로 꾸린 정책점검단에 숙의를 맡겼다. 라 스칼라 공연은 운영자문단 회의, 시민토론회,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이어 문화협력위원회 심의와 타운홀미팅을 열어 여론을 청취한 뒤 결론에 이르렀다. 그 과정이 3개월여 걸렸는데 비교적 빠른 판단이다. 물론 적지 않은 시민이 아쉬움을 느끼고, 벌써 반발도 나온다. 하지만 추가 논란은 부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는 두 사업을 접는 대신 지역에 집중, 예술인 역량을 고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역 예술인들과 시민단체들이 요구한 방향이다. 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의 전시, 연구, 소장 역량을 높이고 해외 교류를 확대하는 등 부산의 전시 역량을 키우기로 했다. 2030년을 목표로 북항에 복합문화전시공간을 짓는다는 계획도 내놨다. 오페라하우스의 경우 올해 완공 후 내년엔 운영과 서비스 안정에 주력하기로 했다. 정식 개관을 2028년으로 미뤄 그 사이 준비를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개관 페스티벌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맡기고, 시는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고 예술 역량을 키우는 지원에 힘을 쏟기로 했다. 퐁피두 사업은 계약 성사 전 단계인 만큼 취소로 끝날 일이다. 문제는 오페라하우스다. 개관 공연을 놓고 소모전이 길었는데 이제는 오페라하우스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 결론이 옳음을 증명하는 길도 오페라하우스 안착 여부다. 전 시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제작극장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부산만의 문화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전환점으로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관건은 시간과 예산, 역량이다. 유수의 오페라하우스가 신작을 올리는 데 수십억 원이 든다. 시 재정과 지역 역량으로 감당할지 아직 의문이다. 서둘러 국내외 극장과의 합동 제작, 단계적 역량 강화 등 대책을 세우는 한편 장기적으로 지역 예술계 저변을 넓힐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사설] BIFF 외국인 관객 증가, 글로벌 콘텐츠 전략 고민해야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오늘 폐막한다. 지난 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5일 폐막식까지 열흘간 부산 전역은 ‘영화의 바다’로 탈바꿈했다. 이 기간 동안 부산 곳곳은 아시아 최대 권위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영화제로 발돋움하고 있는 BIFF가 선보이는 수준 높은 영화를 즐기려는 내외국인들로 북적거렸다. BIFF를 찾는 외국인 관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BIFF에서 처음으로 신설한 경쟁 부문을 올해도 이어가는 등 영화제 위상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지면서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 특급호텔 등에도 외국인 예약이 몰리는 등 지역 경제도 한껏 활성화됐다. BIFF를 찾은 외국인 관객은 2023년 5223명, 2024년 661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전년 보다 곱절 많은 1만 2743명이 영화제를 찾았다. 예매 관객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3.7%에서 2024년 4.6%로, 2025년 7.9%로 상승했다. BIFF 측은 최근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영화제를 찾은 외국인 관객이 지난해보다 대폭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제 기간 동안 시그니엘 부산의 외국인 예약이 지난해 동기 대비 160% 증가하는 등 특급호텔과 식당가 등도 낙수효과를 누리고 있다. BIFF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진 방증이라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이다. 부산 관광업계는 올해 최대 5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부산을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부산이 아름다운 해안 풍광과 함께 도시철도와 호텔 등 대도시 인프라와 먹거리 등을 갖춘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BIFF에 특화된 관광 마케팅을 벌일 경우 영화제 기간 동안 해외 마니아들의 대규모 방문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동네방네비프·커뮤니티비프 등 영화제 대표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외국인 관객을 유치하고 이들이 부산에서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적극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화제 관람과 숙박·교통을 결합한 다양한 상품 개발도 시급하다. 지난 5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아시아 영화제 가운데 유일하게 BIFF 부산 어워드 대상 작품에 아카데미 출품 자격을 부여했다. BIFF는 지난 3월 국제영화제작자연맹이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큰 영화제를 추려 발표한 ‘A-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는 BIFF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BIFF를 보기 위해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객들은 향후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도 보고 부산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의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BIFF가 부산관광공사 등과 함께 BIFF의 글로벌 관광 콘텐츠화 전략을 치열하게 고민해주길 당부한다.
[사설] 이 대통령 “해수부 기능 강화”… 실질적 조치 뒤따라야
북극항로 시범운항 성공과 HMM 부산 이전으로 ‘해양수도 부산’으로 가는 주요 이정표 하나가 섰다. 이재명 대통령도 13일 부산을 찾아 두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짚고,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북극항로 개척에 대해 “대한민국이 바라볼 수 있는 미래가 한층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또 “국제사회 신뢰 속에 지속 가능한 해상 운송 토대를 만들고 안전과 환경을 지키는 기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의 항만·물류와 해양금융, 울산의 조선과 친환경 에너지, 경남 조선기자재와 첨단 제조를 연결해 동남권 미래를 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해양수산부 기능을 강화해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을 힘있게 끌고 가겠다는 약속은 지역민도 환영할 일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수차례 ‘해양강국 대한민국’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북극항로 개척을 국가 성장전략으로 제시하고, 부산을 핵심 거점 항구로 육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이 돼서는 후속 조치에 나섰다. 청와대에 해양수산비서관을 신설해 북극항로 개척과 남부 해양수도권 구축을 맡겼다. 해수부 이전 과정은 더 놀라웠다. 지난해 5월 공약으로 공식 선언한 지 7개월여 만에 이전까지 마무리하는 실행력을 보였다. HMM 등 해운사 이전, 부산해사전문법원 신설도 이런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성과들이다. 국내 컨테이너선으로는 사상 처음 50일 만에 북극항로를 왕복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여러 행정 조치에도 부산이 해양수도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당장 해수부 기능 강화 방안부터 구체화해야 한다. 북극항로 개척, 해상풍력 및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 구축, 조선해운 전·후방 산업 육성 등 핵심 사업들은 해수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다. 산업통상부와 국토교통부 등에 분산된 기능과 권한을 어떻게 이관하고 조정할지 모호한 상황이다. 해수부 산하기관 이전도 표류 중이다. 부산에 해양금융 기능을 강화하려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이전을 더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 현장에서 정책과 사업을 펼칠 기관·기업이 없다면 해양수도는 공염불에 그친다.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은 분명 매력적인 청사진이다. 하지만 부울경 지역민과 산업 현장에서는 불투명하고 모호하다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서남권 800조 투자, 44개 부처 세종 이전 등 타 지역의 경우 구체적 로드맵들이 속속 나온 것과도 비교된다. 부울경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굴러가게 할 예산이나 세제 혜택,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가 서둘러 나와야 한다. 기업 이전 유인책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HMM이 ‘부산 시대’를 열었다지만 일부 직원만으로 본사를 꾸렸다. 기업 활동과 금융 같은 핵심 사업을 부산에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느낄 환경도 만들어야 하겠다. 남부 해양수도권 구축에 앞으로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예산과 실효성 있는 제도 변화다.
검찰의 김장
지난 2일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검찰은 존재하던 수십 년 동안 늘 뉴스의 중심에 서 있던 조직이었다. 검찰의 한자 표기 ‘檢察’에는 칼과 관련한 표기가 전혀 없음에도 ‘검’자를 ‘칼 검’자로 새기면서 검사를 칼잡이로 묘사할 정도였으니 그 조직의 업무가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그런 검찰 관련 뉴스는 형사사건 일색이어서 대부분 살기등등한 내용이었으나 때때로 훈훈한 뉴스도 보도가 됐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이 범죄 피해자들과 함께 김장 봉사를 했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이다. 검찰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조직들이 김장을 통해 훈훈한 소식의 주인공이 되려 하는 건 한국적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하지만 검찰 내부적으로는 김치를 담그는 봉사 활동에 등장하는 김장과 다른 의미의 김장이 존재했다. 일종의 은어로서 검사들이 즐겨 사용하던 김장은 인사철을 앞둔 사건 처리를 의미했다. 다음 수사팀이 꾸려지면 곧바로 사건 수사가 이어지도록, 혹은 공소에 차질이 없도록 사건을 김장 담그듯이 차곡차곡 재어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 방식이었기에 김장이라 불렸다.전국을 떠돌며 자리를 옮겨다녀야 했던 검사들은 새로운 지역에 배치될 때마다 한동안 해당 지역 기존 사건 파악에 몰두해야 할 정도로 경착륙이 일상이었다. 검찰의 경착륙은 검사 개인으로서도 고된 일이었지만 형사소송의 공백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보니 검찰은 김장을 통해 연착륙을 꾀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검찰 출입 기자들은 인사철을 앞둔 시점에 검찰발 사건이 너무 없어 “휴가라도 가야 할 판”이라며 푸념하기도 했다.그러던 검찰 조직이 사라지고 공소청으로 바뀐 뒤 김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공소청은 한시적으로 개청 이후 90일 동안 기존 검찰 시절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할 수 있으나 수사 동력 저하로 사건 처리 지연이 우려된다는 소식이다. 사건의 혼선을 줄이고 수사를 인계받는 기관의 연착륙을 돕기 위한 절차가 법적으로 마련됐으나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차곡차곡 잘 익은 김장이 아니라 마구 절여진 겉절이 상태로 사건이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김장이든 겉절이든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래도 사건 처리의 경착륙은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형사소송 체계 급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영한
[데스크 칼럼] 우리 곁의 산사
명정학교의 존재를 최근에 알았다. 같은 이름의 명정학교장학재단 강길주 이사장을 만나면서다. 강 이사장은 외조부인 이산 스님의 뜻을 기려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이산 스님은 범어사 주지를 역임하며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에 헌신한 선각자다. 성월 스님 등과 함께 1906년 부산에선 최초의 근대학교라 할 수 있는 명정학교 설립을 이끌었고, 현 보성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학교 운영에도 참여했다. 식품회사 사업가인 강 이사장은 늦게나마 외조부의 헌신을 재조명하고 인재 양성 의지를 되살리기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명정학교의 이름을 땄다. 명정학교는 오늘날 금정중학교와 청룡초등학교의 전신으로, 곧 범어사가 세운 학교다. 수행과 기도의 공간인 사찰이 근대학교를 설립해 신학문을 가르치는 데 앞장섰다는 사실은 의외로 다가왔다. 범어사와 명정학교는 독립운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 부산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곳이 범어사와 명정학교다. 기록에 따르면 3·1운동을 앞둔 1919년 2월 만해 한용운이 당시 범어사 주지인 성월과 담해, 이산 스님을 만나 봉기에 대해 논의했고, 범어사 스님들은 만세운동에 함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거사일은 동래읍 장날인 3월 19일. 3월 18일 기습 시위에 이어 19일 오후 동래시장에서 대대적인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이 만세운동에 명정학교 학생들도 동참했으니, 이로 인해 연행된 인물은 1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 김법린은 일제의 총칼을 피해 상하이로 탈출,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명정학교는 폐교됐다가, 1926년 불교전문강원으로 개원된 뒤 1943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시 폐원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국난의 위기에서 범어사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범어사는 전장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안장하는 공간이 됐다. 스님들이 전사자들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와 안장에 힘을 보탰다. 전쟁 후 1956년 국군묘지가 조성되기 전까지 범어사는 임시 국가현충원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범어사가 ‘국가 현충 사찰’로 인정받은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신라 문무왕(678년) 때 창건된 범어사는 의상 대사가 신라에 화엄종을 전하기 위해 창건한 10개 화엄사찰(화엄십찰) 중 하나다. 임진왜란 때는 부산에 가장 먼저 상륙한 왜군의 공격에 절 대부분이 불타는 아픔도 겪었다. 1602년 선조 35년 때 중건이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범어사의 건물 대부분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범어사엔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도 있다. 국보 삼국유사(권 4·5)를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삼국유사 원본은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가끔씩 범어사를 찾아가곤 한다. 금정산 국립공원에 자리 잡은 범어사는 부산 시민에겐 친숙한 산사다. 하지만 간과한 역사가 적지 않음을 이번에 알게 됐다. 13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국가를 위해, 민중을 위해 굵직한 기여를 한 사실을 새롭게 되새기게 됐다. 오늘날 범어사는 또다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선문화관을 중심으로 지난해 ‘비오마인드(BEO Mind)’란 브랜드를 론칭하며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비오마인드는 범어사의 수행문화와 사찰음식, 걷기·소리명상, 공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연결해 범어사만의 독자적인 웰니스 브랜드로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범어사는 템플레킹(템플스테이+트레킹)이나 선명상 축제 등 여러 대중적인 활동을 활발이 전개하고 있다. 이는 최근 열풍이 부는 ‘힙한 불교’와 맞닿은 행보다. 선재·정관 스님으로 대표되는 사찰음식을 비롯해 트렌디한 캐릭터, 키링 등 용품과 다채로운 이벤트로 불교는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범어사 또한 비오마인드를 통해 시민·관광객과 접점을 넗히고 있으니, 지금 선문화관 앞에는 외국인을 맞이하기 위해 국제템플스테이 건축이 한창이다. 얼마 전 다시 범어사를 들렀다. 입구인 조계문(보물 1461호) 앞에서 난치병 환자 돕기 자선음악회가 열려, 트로트 등 대중가요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산문 안에선 불경 독경 소리가 퍼지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신라의 고승 원효 대사가 저잣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불교의 가르침을 민중에게 전하려 했다는데, 지나친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사찰의 모습에서 시민 곁으로 다가오려는 종교의 대중화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중앙로365] 부캉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갑자기 상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해수욕장이 아니라 부산 북항의 수로에 나타났다. ‘부캉이’라는 이름까지 얻은 이 상어를 보기 위해 백만 명 넘게 몰렸다고 한다. SNS에는 영상과 사진으로 넘쳐난다. 화면 속 사람들의 환호는 진심이고 그 열기는 뜨겁다. 그야말로 ‘부캉이 신드롬’이다. 상어는 원래 친근한 동물이 아니다. 상어 하면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죠스’부터 떠오른다. 죠스는 “둠~둠~”하는 공포스러운 배경음악과 함께 출몰해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존재다. 그런데 북항에 나타난 부캉이는 정반대다. 사람들은 반가워하고, 바다로 돌려보낸다는 소식에 무척 아쉬워한다. 도대체 부캉이의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첫째는 호기심이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이지만 야생의 상어를 일상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다. 수족관에서나 볼 법한 상어가 우리가 사는 도시 한복판의 바다에 나타났다. ‘정말 상어가 북항에 있다고?’라는 단순한 궁금증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이 끌린다. 둘째는 의외성이다. 무시무시할 것으로 생각했던 상어가 생각보다 친근하다. 물 위로 지느러미를 내놓고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사람들의 환호를 즐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빨 사나운 포식자라는 기존의 이미지가 어느 순간 부산을 찾아온 재롱둥이 이미지로 바뀌었다. 예상이 깨지는 순간 급친근해진다. 셋째는 그래도 상어다움이다. 아무리 친근해 보여도 부캉이는 상어다. 지느러미를 꼿꼿하게 세우고 물살을 가르며 능수능란하게 헤엄치는 모습에는 야생 상어 특유의 ‘살벌함’이 있다. 귀엽다고 해서 상어다움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은 감성이다. 부캉이가 좀처럼 부산을 떠나지 않자 사람들은 여기에 이야기를 입히기 시작했다. ‘부산이 그렇게 좋으냐’며 반기고, 떠난다고 하니 섭섭해한다. 부캉이가 읽을 리 없는 메모들이 세워둔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한 마리의 상어에게 부산에 대한 애정과 유머, 아쉬움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부캉이는 어느새 구경거리를 넘어 부산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덕분에 부산이 일약 스타도시가 되었다. 조금 무리한 연결이지만, 나는 이 현상을 보면서 우리 정치가 떠올랐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리는 정치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도 먼저 호기심과 기대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 정책이 실현되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될까’라는 기대가 생겨야 한다. 좋은 정치는 국민에게 미래를 궁금하게 만든다.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정치가 만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에너지다. 정치에는 의외성도 필요하다. 보수라고 해서 진보의 모든 생각을 배척하고, 진보라고 해서 보수의 모든 가치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보수가 진보의 좋은 정책을 받아들이고, 진보가 보수의 합리적인 가치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은 정치에서 희망을 본다. 지금 우리 정치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듣기도 전에 이미 답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다워야 한다. 즉 프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말솜씨가 아니라 전문성과 실력을 갖춰야 가능하다. 경제를 말하려면 경제를 이해하고, 외교를 말하려면 탁월하게 국제 정세를 읽어야 한다. 정치인은 복잡한 문제를 공부하고 자신의 언어로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어설픈 지식과 즉흥적인 주장으로 선진국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리고 결국 정치는 사람의 마음에 닿아야 한다. 국민이 ‘저 사람은 정말 이 나라를 아끼는구나’ ‘우리 지역과 다음 세대를 위해 일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감동은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보다 공동체를 앞세우는 태도와 책임 있는 행동이 쌓일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부캉이가 언제까지 북항에 머물지는 모른다. 그래도 부캉이가 남길 한 가지 장면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부캉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기대와 마음이다. 요즘 우리 정치를 보면서는 오히려 “이제 좀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언젠가 정치인을 향해서도 국민이 진심으로 “조금 더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부캉이에게는 있고, 우리 정치에는 부족한 것이 어쩌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프런티어] 생각을 바꾸니 장애가 아니었던 장애
“대표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출근해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한 직원이 자주 건네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큰 부담이 없는 직원이지만, 말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일하는 모습이다. 근무 시간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맡은 일을 시작한다. 장애인인 그가 일하는 곳은 부산 동구에 본사를 둔 한 중소기업이 100% 출자해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음료와 음식을 만들고 선물세트를 제작한다. 장애인 직원 11명과 비장애인 직원 6명이 함께 일한다. 처음부터 장애인 고용에 특별한 뜻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반대에 가까웠다.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계속 곁에서 도와야 하고 기존 직원들의 업무도 늘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의무고용제도가 있으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경영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은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편견이었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을 만들게 된 출발점은 거창한 사회공헌 계획이 아니었다. 모회사 직원들이 제대로 밥을 먹을 공간이 필요했다. 업무가 늘면서 식사를 거르거나 과자로 끼니를 대신하는 직원들이 많았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주변 식당도 줄어들었다. 마침 장애인 의무고용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해 부담금도 내고 있었다. 두 고민을 한 공간에서 해결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음료와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함께 일해 보니 예상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손이 빠른 직원, 반복되는 일을 꼼꼼하게 해내는 직원,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익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직원이 있었다. 음료와 식사에서 시작한 업무는 쿠키와 선물세트 제작·포장으로 넓어졌다. 사람에 맞춘 사업모델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 함께 일하면서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범위를 넓힌 것이다. 가장 크게 변한 사람은 장애인 직원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장애인을 고용하기 전에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를 먼저 생각했다. 함께 일한 뒤에는 질문이 달라졌다.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조금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묻게 됐다. 장애인 고용은 기회를 만드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장애인 고용을 기업이 이행해야 할 의무로만 바라보면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에 ‘고용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계속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떤 직무를 만들 것인지, 근로자의 특성에 맞는 역할은 무엇인지, 교육과 적응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 교육·복지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연결할 필요가 있다. 우리 매장은 ‘장애인이 일하는 사업장’이라는 문구를 크게 내세우지 않았다. 장애를 숨기자는 뜻이 아니다. 장애인을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는 사회보다 생활공간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사회가 더 건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세상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동료를 만나고, 맡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운영한다고 해서 장애인 고용의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매일 무엇이 맞는지 고민한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것은 있다. 예전에는 장애인이 무엇을 못하는지를 먼저 보았다. 이제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지를 먼저 보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제가 할게요”, “저도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정부는 정부가 잘하는 일을 하고, 기업은 기업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 가족은 가까운 곳에서 가능성을 믿어주고, 지역사회는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갈 공간을 만들면 된다. 모두가 모든 일을 잘할 필요는 없다. 각자가 잘하는 것을 찾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연결하면 된다. 장애인 고용 문제도 거창하게 풀려고 하기보다 각 영역들이 잘하는 것을 함으로써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일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자리,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면 된다.
[기고] 문화예술 행정 대전환, 부산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문화예술 행정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 지난 7월 국회에서는 ‘문화예술진흥법’ 전부개정안이 발의됐고, 정부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의 대규모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법률 개편과 기관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향후 국가 문화예술 정책의 구조와 예산, 중앙과 지역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주목할 것은 예술을 바라보는 정책 관점의 변화다. 지금까지 창작활동에 대한 공적 지원이 정책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창작·제작·유통·시장·기술·산업을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는 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공공 재원 역시 단순한 지원에 머물지 않고 창작-제작-유통-향유-재투자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기관 통폐합이 또 다른 중앙집중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 기관에 흩어진 권한과 예산을 하나의 거대한 중앙기관이 다시 통제한다면 ‘분산된 중앙집권’이 ‘통합된 중앙집권’으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 지역이 물어야 할 것은 “어떤 기관을 합칠 것인가”가 아니다. “중앙기관이 가진 사업과 예산, 권한 가운데 무엇을 지역으로 이양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기관 통합과 문화 분권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진정한 문화행정 혁신이 될 수 있다. 부산도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앙정부의 공모 사업이 발표된 뒤 국비 확보에 나서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문화,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예술인 지원 등 지역이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을 선별해 권한과 예산의 포괄적 이양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부산문화재단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지원금을 배분하고 중앙정부와 부산시의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을 넘어 부산 문화예술 생태계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광역 문화정책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술인과 기획자, 문화공간, 대학, 문화기업, 관광·콘텐츠산업, 기초문화재단을 연결해 새로운 협력사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예술 현장 역시 정책의 수혜자에서 정책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예술산업 확대 속에서 기초예술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AI 시대 창작자의 권리와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청년 예술인이 부산에서 창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현장이 먼저 논의하고 제안해야 한다. 부산에는 영화·영상, 공연, 미술, 음악, 축제 등 오랫동안 축적된 문화 자산이 있다. 여기에 해양도시라는 정체성과 관광·콘텐츠산업을 결합할 수 있는 잠재력도 크다. 이제 개별 장르와 지원사업에 흩어진 자산을 하나의 지역문화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이번 변화는 향후 10년의 문화예술 행정 구조를 결정할 중요한 전환점이다. 중앙이 기관을 통합할 때 부산은 문화 생태계를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중앙이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 부산은 새로운 문화 분권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은 중앙의 결정을 기다리는 ‘관망’이 아니다. 변화에 앞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선제적 대응’이다. 문화행정 대전환의 시대, 부산이 문화 분권의 새로운 모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 돋보기] 부캉이야 고맙다
부산항 북항에 찾아온 상어 한 마리가 뜻밖의 일을 해냈다. ‘부캉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동안 조용했던 북항이 웃음과 탄성으로 채워졌다. 누적 방문객은 120만 명을 넘어섰다. 평소 하루 평균 2000명이 찾던 공원에 하루 14만 명이 다녀가기도 했다. 침체된 부산에 모처럼 사람 냄새가 났다. 부캉이야, 고맙다. 반가움은 소비로도 이어졌다. 부캉이 등장 직후인 지난달 19일~20일 부산 동구의 외지인 관광소비액은 약 26억 3000만 원으로, 직전 주말보다 4.2% 늘었다. 이 증가분을 모두 부캉이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지역 상권에 온기를 보탰다는 점은 반갑다. 누군가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주변 가게에 들렀을 것이다. 자영업자에게는 이런 손님 한 명 한 명이 절실하다. 부산의 일상은 팍팍하다. 거리의 ‘임대 문의’ 안내문은 빈 점포의 표시이면서 버티다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의 흔적이다. 한 자료에서는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0년 5.0%에서 2026년 8.6%로 높아졌다고 한다. 빈 가게 뒤에는 임대료와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사장님의 눈물, 생계를 걱정하는 가족이 있다. 부동산시장 침체에 놓인 건설업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분양으로 자금이 묶이고 공사비 부담까지 커지면 건설회사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현장 근로자도 어려워진다. 집이 팔리지 않는 문제는 결국 지역의 일감과 소득이 줄어드는 문제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산에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 있다. 가덕신공항부터 그렇다. 정부와 사업자는 현실적인 공사비와 재정 책임을 함께 따져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하고 착공을 서둘러야 한다. 센텀2지구 역시 속도를 내야 한다. 다만, 풍산의 기장군 이전을 둘러싼 주민들의 안전과 환경 우려를 개발의 걸림돌로만 취급해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우려에 답할 자료와 대책을 내놓고, 이전 지역에도 이익이 돌아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부산의 해양·금융·물류산업과 연결되는 기관을 넘어 생산유발효과가 더 큰 이전기관을 발굴하여 이를 유치해야만 하는 논리와 정착 여건을 갖추어 정부를 설득하여야 한다. 전남·광주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사례처럼, 부산도 대기업이 투자할 조건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산도 북항2·3단계 부지, 센텀2지구 부지, 강서구 대규모 연구산업단지가 있다. 서둘러야 한다. 부캉이가 불러온 활기는 부산에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돈을 쓸 이유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 이유를 계속 만드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기억은 어디에 남는가 - 제2회 부마미술제
1980년대 민중미술은 미술과 현실의 관계를 정면으로 물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뿐 아니라 미술은 누구에게 말하는가, 예술가는 자신이 사는 시대 앞에서 어디에 서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그 정신을 오늘 되살린다는 것은 당시의 걸개그림이나 목판화를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태도다.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보이지 않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예술가 자신도 그 현실의 바깥에 있지 않다는 자각이다. 부마미술제 역시 1979년의 거리와 시위 군중을 되풀이해서 보여주는 데 머물 수는 없다. 기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역사를 새삼 낯설게 만들고, 다시 질문하게 할 때 비로소 현재가 된다. 박현효의 ‘메모리 1979’(memory 1979)는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부마의 기억을 되새긴다. 화면에는 영웅적인 군중도, 격렬한 충돌도 없다. 무장한 진압경찰의 뒷모습 위로 저녁을 예감하는 잿빛 하늘이 펼쳐질 뿐이다. 작가의 기억에는 마산 3·15의거탑, 부림시장, 창동사거리, 서성동 분수로터리와 함께 “독재타도”, “유신철폐”의 외침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작품은 그 모든 장면을 다시 설명하지 않는다. 얼굴을 지운 채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진압경찰과 흐릿한 공간으로 그 시대의 억압을 압축한다. 그 기억은 5·18과 1987년 6월항쟁의 기억까지 자연스럽게 불러낸다. 어떤 것은 선명하게 남지만 어떤 것은 지워지고, 파편으로 남는다. 그래서 역사를 그린다는 것은 반드시 거대한 사건을 거대한 이미지로 옮기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오래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읽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한다는 것은 1979년을 박제하는 일이 아니다. 그때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그리고 그 질문이 오늘의 삶 속에서 어떻게 되돌아오는지를 묻는 일이다. 자유와 존엄, 권력에 대한 비판, 시민이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되고자 했던 열망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부마미술제가 오래 지속되려면 ‘부마를 그리는 미술제’에서 더 나아가 1979년을 통해 오늘을 보고, 오늘의 현실을 통해 다시 1979년을 읽는 미술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부마는 기념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살아 있는 질문이 된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에, 도시의 거리에, 때로는 그림 속 잿빛 하늘과 등을 돌린 사람들의 몸에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흔적을 다시 보게 한다.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한 시간을 다시 현재에 도착하게 하는 것. 그때 부마는 과거의 이름이 아니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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