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5 금요일
[사설] 대통령-대법원장 정면충돌, 헌법 근본정신 생각해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재제청 요청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중인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재제청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부각해 ‘빈집털이’에 비유하며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재제청은 대통령이 대법관을 고르는 소위 ‘쇼핑’에 해당한다며 더 나아갈 경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법관에 대한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 권한이 전례 없이 상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국민들은 대법관 공석에 따른 재판받을 권리 침해까지 우려해야 할 판이 됐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입장문을 내고 “달리 (대법관에 대한)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재제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지난달 말 보낸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 문서에는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청와대가 보낸 재제청 요청 문서엔 ‘헌법 제104조2항 등에 따라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 명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 대법원장은 이를 구체적 사유와 근거로 보지 않았다. 이는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후보자가 아닌 후보를 제청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관 임명을 놓고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이렇게 충돌하는 사이 동의권을 가진 국회는 갈등의 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를 ‘내란’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가며 비난하고 국힘은 일제히 대법원장 결사 엄호에 나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갈등이 심화하고 고착하면서 장기화할 경우 내년 6월 조 대법원장 퇴임까지 대법관 공석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법관 한 명이 연간 3000~40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점을 감안하면 상고심 처리 지연 사태 우려까지 나온다.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할 국가기관들이 빚은 갈등이 되레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지경이 된 것이다. 헌법에서는 한때 사법권 독립을 위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통령의 임명권이 기속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3권 분립 정신이 더욱 명확해지면서 결국 제청권과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은 동등한 지위가 됐다. 동등해진 만큼 갈등이 벌어지면 조정이 쉽지 않고 그 결과 작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번 사태는 헌법의 근본정신으로 풀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 그 경우 결격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밟는 게 옳다.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대법원장은 즉시 새 제청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의 권한은 그 크기만큼 명확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사설] 시민 건강지표 전국 최악 수준, 건강도시 부산 무색
부산은 2006년 WHO 서태평양지역 건강도시연맹(AFHC)에 가입했다. 가입을 계기로 부산은 시민이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걷기 운동 생활화는 물론 건강한 마을 만들기 등 ‘건강도시 부산’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 2040 부산도시기본계획에서도 ‘탄소중립 건강도시’를 중요 정책으로 설정하는 등 건강한 도시 만들기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도시연맹에 가입한 지 20년을 맞는 시점에 부산 시민의 당뇨병 사망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다른 건강지표들의 상당수도 전국 최악 수준을 보인다고 하니 그동안의 정책 실효성이 대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2025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부산 시민의 당뇨병에 의한 사망은 표준인구 10만 명당 12.5명으로 전국 1위인 것으로 집계됐다. 6.1명을 기록한 서울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산은 대장암(9명), 간암(11.5명), 알츠하이머(12.6명), 심장질환(31.1명), 뇌혈관질환(21.6명) 부문에서도 전국 2위로 나타났다. 더욱이 이번 통계는 인구 구조가 상이한 각 도시들의 사망률을 비교하기 위해 연령표준화 지표를 사용해 작성됐다. 부산에 고령자들이 많기 때문에 성인병 사망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부산의 건강지표 그 자체가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이 드러났다는 의미다. 문제는 부산 시민 건강지표가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확한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은 이번뿐만 아니라 2019년에도 당뇨병 사망률이 전국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2024년 심장질환 사망률이 전국 최다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그동안 복합적인 만성질환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부에서는 시민들의 음주·흡연율이 높고, 제조업 종사자들이 많다 보니 유해물질 노출 빈도도 높아 건강지표를 악화시켰다는 등의 섣부른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항간에서는 낙동강 하류 지표수를 상수원으로 사용한 데 따른 것이라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시민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부산시가 전문가 용역 등을 통한 대대적 정밀 조사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역학조사 등을 통해 여러 질환의 사망률이 동시다발적으로 높아진 이유부터 밝혀야 제대로 된 후속 대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엔 시가 그동안 추진한 건강도시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보완 대책 추진이 필요하다. 만약 조사 결과에서 음주와 흡연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이에 초점을 맞춘 대대적인 건강과 복지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부산의 건강지표 악화는 도시 브랜드 이미지는 물론 인구 유입 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시가 원인 조사 등 대책 마련을 최대한 서둘러 주길 당부한다.
[사설] 시민 추억 깃든 금강식물원, 공공성 살릴 해법 필요하다
국내 1호 민간 식물원인 부산 동래구 금강식물원이 9개월째 휴원 중이다. 1969년 향토기업 성창 창업주 고 정태성 회장이 ‘나무로 번 돈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뜻으로 사재를 출연해 만든 시설이 운영난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 공간은 반세기 넘게 시민 휴식처이자 생태 교육의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민간 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한때 연간 25만 명에 달했던 방문객은 지난해 7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시설 노후와 안전 문제, 관리비 부담에다 인근 금강공원 동물원과 놀이시설 폐업이 겹쳐 결국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이자 금정산 생태관광 축을 잇는 자산으로서의 보존 대책이 절실하다. 식물원은 해송·적송 등 세월의 더께가 앉은 노거수로 빼곡하다.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는 생태 자산이 사라지게 놔둬서는 안 된다. 금정산 국립공원 출범으로 생태 관광이 주목을 받는 지금이 금강식물원의 재생을 논의할 적기다. 부산시는 금강공원 재정비사업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추진하며 식물원을 비롯한 사유지를 매입해 직접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동래구는 교육친화공원 조성과 숲속도서관 등을 구상하고 있다. 인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숲세권’ 기대도 적지 않다. 금강식물원을 금강공원과 금정산, 동래 역사문화권을 잇는 도시형 생태·교육·휴식 거점으로 재편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지난해 폐쇄됐던 세종 금강수목원이 최근 세종시와 충남도의 운영비와 인력 분담 합의로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가치 있는 녹지 자산을 행정 협력으로 되살린 점이 주목된다. 미국 매디슨의 올브리치 식물원은 시가 비영리 단체에 모금·교육·프로그램 운영을 위탁해 활성화에 성공한 경우다. 금강식물원이 폐쇄냐 시 직영이냐는 양자택일에 갇히면 길을 잃는다. 한편 금강식물원의 회생 방향으로 다른 공공시설과의 규모 경쟁보다는 금정산 국립공원 식생과 연계된 특성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 서울식물원처럼 공원까지 결합한 도시형 보타닉 가든으로의 전환까지 다방면의 검토가 필요하다. 반세기 넘게 시민을 품은 숲이 수익성에 휘둘려 닫힌 공간이 될 것인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생태·문화 자산으로 거듭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 금강식물원 회생 해법은 유연해야 한다. 사유지를 매입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법부터 장기 임차, 공공 위탁, 비영리 전문조직과의 공동 운영까지 다양한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부산시와 동래구는 금강공원 재정비를 식물원 문제와 별개로 다뤄서는 안 된다. 금강공원의 재도약은 금강식물원을 살리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핵심은 금강식물원의 생태적 가치를 보전하고 시민 접근성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공공적이되 전문성과 지속 가능성이 더해지는 부산형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밀물썰물] 도요토미
2021년 7월 일본 도쿄에서의 일이다. 당시 도쿄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1년 늦게 ‘2020 도쿄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이 도쿄 시내 선수촌 외벽에 건 현수막이 논란이 됐다.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상유십이’(尙有十二-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의 내용을 본뜬 문구였다.일본 언론은 정치적 메시지라며 문제를 제기하고, 극우 단체는 선수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우리 선수단은 현수막을 내렸다.2026년 일본 나고야에서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식 상황이 벌어졌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선수촌 환영 행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등장시킨 것이다. 조직위는 선수촌 환영 행사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전국시대를 상징하는 3명을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전국시대를 거쳐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모두 현재의 아이치현 일대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아이치현과 나고야시가 관광·문화 콘텐츠로 적극 활용하는 인물이다. 도요토미는 1592년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당사자다. 전란은 7년간 이어졌고, 당시 수많은 조선 백성들은 일본의 침탈에 숨을 거뒀다.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임진왜란은 한중일 3개국으로 확산됐고, 우리에겐 아픈 역사로 각인됐다.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특정 역사적 인물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의도는 없었다. 개최지인 아이치·나고야의 지역 문화와 관광을 소개하기 위한 행사였다”고 해명했다.조직위 해명이 무색하게 나고야시의 한 공원에 도요토미를 소재로 한 포토존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관람객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갑옷 모양의 패널 뒤에 서서 일본 전국시대 무장(武將)이 된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된 것이다.지역을 대표하는 역사 인물을 국제대회에 내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받은 나라의 선수단 공식 환영행사에 전범을 앞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포토존까지 운영하는 것은 국제대회 주최국으로서 예의가 아니다. ‘상유십이’ 현수막을 두고 시위까지 벌였던 일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영한
[데스크 칼럼] 강강술래를 하자
격투기를 좋아한다. 지금은 사라진 입식타격 K1으로 입문해 요즘은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단체인 UFC 경기를 즐겨 본다. 처음엔 링 위의 피 튀기는 혈전, 시원한 KO 장면에 눈길이 갔다. 주먹질이라곤 해본 적 없는 범생이 눈에 UFC 옥타곤(팔각형 링)은 완전 새로운 세계였다. 그러다 링 밖의 룰을 알게 되면서 더욱 빠져들었다.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승자는 패자를 ‘리스펙’(존중)하는, 이른바 무도(武道)의 매력이다. UFC 페더급에서 뛴 ‘코리안 좀비’ 정찬성의 3년 전 은퇴 경기는 리스펙 그 자체였다. 이 체급 챔피언을 지낸 맥스 할러웨이와 경기에서 정찬성은 3라운드 큰 거 한 방에 쓰러졌다. 가끔 이 경기를 다시 돌려보는 이유는 그다음에 벌어진 장면 때문이다. KO 승리의 기쁨을 ‘아주 잠깐’ 만끽한 할러웨이는 곧장 패자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누운 정찬성을 직접 부축해 의자에 앉힌 뒤 포옹을 건넸다. 더 압권은 판정 순간이다. 심판이 승자의 손을 치켜들자 정작 할러웨이는 정찬성의 손을 치켜올렸다. 그러곤 “코리안 좀비는 레전드(전설)다”를 외치며 관중의 환호를 끌어냈다. 할러웨이의 진한 리스펙을 받으며 이날 정찬성은 은퇴를 선언했다. 승패는 링 안에서의 일일 뿐이다. 옥타곤에서 내려오면 승자도 패자도 없고 동료를 존중하는 태도, 격투기를 사랑하는 마음만 남는다. 요즘 정치권을 보며 링 위의 낭만을 생각한다. 카운터펀치, 난타전, 2라운드 등 격투기에 빗댄 정치 기사는 예나 지금이나 흔한데, 승자가 패자에게 손을 내미는 훈훈한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상대를 향한 혐오와 악마화를 넘어 같은 진영에서도 배제와 편 가르기가 난무한다. 실제로 피를 튀기며 싸우는 옥타곤 선수들이 신사처럼 보일 정도다. 정치의 수준이 곧 유권자의 수준이라지만, 너도나도 잘못이라는 양비론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도 맞지만 당신도 옳다는 양시론으로 상대를 품을 때, 퇴행을 멈출 여지가 생긴다. 정가의 도(道)를 다시 세우는 작업은 어디서부터, 누가 먼저 시작해야 할까.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물꼬를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포용을 강조한 이 대통령은 한 지지자의 X(옛 트위터) 게시물을 인용했다가 과거 비하 글이 알려지자 곧바로 삭제했다. 유감의 뜻과 함께 지지자들을 향해 “여러분이 바로 이재명이고 대통령이라 생각하고 행동해 달라”며 건전한 논쟁을 당부했다. 지도자의 말과 솔선수범은 범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여야 지도자들이 잠시 링 아래로 내려와 품격있게 호응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마침 추석 연휴다. 한 경기를 끝내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즈음 정치 뉴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기차역에서 정당별로 갈라져 귀성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다. 올 추석에도 똑같은 계획이라면 글쎄다, 예년을 떠올려 보자. 아무리 90도로 허리를 숙인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는 이들이 있었던가. 시민 호응을 바란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폴더인사 말고 ‘강강술래’는 어떤가. 좀 더 큰 광장이 있는 부산역 앞이 좋겠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앞장서 광장 한가운데서 손을 맞잡으시라. 그러고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다. 양당 지도부가 하나둘 합세하면서 서서히 원이 커진다. 역을 오가는 시민들도 모여들 것이다. 강강술래에 노래가 빠질 수 없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선창) “강강술래~”(후창) “사이좋게 지내보세~”(선창) “강강술래~”(후창) 명절 소원을 빌고 싶은 시민이 있다면 기회를 주자. “우리가족 건강하게~”(선창) “강강술래~”(후창) “주식시장 떡상해라~”(선창) “강강술래~”(후창) 광장의 강강술래는 외국인들에게도 큰 볼거리를 선사할 테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기에, 세계인에게 자랑할 K-컬처로 손색없다. 롯데 자이언츠가 잘해야 집구석이 조용하듯, 정치권이 싸울수록 명절 밥상 분위기도 험악해진다. 올 추석에 친인척과 대화가 정치 얘기로 흘러간다면 강강술래가 빛을 발할 때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5촌 당숙을 향해 “강강술래~”, 민주당을 싸잡아 욕하는 큰아버지 앞에서 “강강술래~”, 국힘은 국짐이라 핏대를 세우는 이모 눈을 바라보며 “강강술래~”를 외치자. 그래도 안 통하면 손을 맞잡고 일어나 왼쪽으로 돌자. 왜 하필 왼쪽이냐 버티면 오른쪽으로 돌자.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강강술래”를 노래하다 보면 온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바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만 남을 것이다. 이 글에 혹시 댓글이 달린다면 미리 답글을 드린다. “강~강~술~래~!”
[2030 칼럼] 불협하는 합창은 어디에서 울리는가
며칠 전 부산비엔날레를 찾았다. 8월 말 개막한 비엔날레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영도의 옛 부산남고, 스페이스 원지에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22개국 46개 팀이 참여해 11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다. 주제에 걸맞게 각각의 작품은 시공간을 압도하는 여러 형태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때로는 작품에 깊이 몰입하도록, 때로는 시각적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끊임없이 변동하는 소리의 진폭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소리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일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이번 전시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거듭 되묻도록 했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 채 말이다. 지난달 개막 부산비엔날레 관람 다양한 소리 활용한 작품 경험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 공고한 체제 대항하고 균열 가해 부마민주항쟁 47주년 앞두고 연대와 저항의 힘 떠올리게 해 불협하는 합창. 선명한 역설(paradox)의 표현이다. 불협과 합창은 쉽사리 결합할 수 없는 모순된 말이다. 이 역설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첫째, 합창은 조화로워야만 한다는 우리의 관념에 가하는 균열이다. 여기서 조화는 하모니(harmony)의 의미에 가까울 텐데, 서로 다른 소리가 아름답게 한데 어우러짐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불협하는 합창을 진정한 합창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어우러진다는 것은 어쩌면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부분들은 각각의 개성을 일정하게 깎아내야만 한다. 이는 화합된 전체가 그것을 이루는 개개의 합보다 크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비엔날레의 작품 몇몇은 자신의 개성을 포기한 채 전체에 순치되기보다 고유의 소리를 지켜내기를 택한 존재들을 비춘다. 십여 년에 걸쳐 탈북민 공연단의 모습을 기록한 이동근 작가의 ‘아리랑 예술단’과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던 고려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소리를 포착한 전소정 작가의 ‘구미호하기’가 대표적이다. 탈북민과 고려인 모두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성격을 지닌다. 경계 위를 늘 위태하게 걸어가는 그들이 지켜내는 것은 다름 아닌 소리다. 호흡과 함께 만들어지는 인간의 소리는 가리거나 숨길 수 없는 오롯한 내면적 힘이라는 사실을 이들 작품은 뚜렷이 보여준다. 한편,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주제가 환기하는 또 다른 의미는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가 공고한 체제에 가하는 균열이다. Dissident Chorus를 직역한다면 ‘반체제적 합창’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쌓여 울려 퍼지는 거대한 소리는 너무도 공고하여 무너지지 않을 듯한 것들에 대항하는 힘이 된다.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의 꿈’은 합창이 지닌 대항적 성격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공사장의 철제 리프트 위에 똑같은 교복을 입은 12구의 마네킹과 세 곡의 합창곡을 통해 한국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왔던 원대한 성장의 꿈을 통렬하게 비웃는다. 해방 후 한국 사회가 짊어져야 했던 만 가지나 되는 꿈은 과연 무엇인가. “지구촌 시민의 꿈, 전쟁 끝나는 꿈, 평화통일의 꿈, 남남북녀의 꿈, 출산율 회복의 꿈, 국토개발의 꿈, 경제 성장의 꿈…” 작가는 끊임없는 꿈의 연쇄가 우리를 쉴 새 없이 달리도록 만들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꿈으로 누리는 만 가지 꿈”이라는 가사를 통해 꿈의 허위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만 가지의 꿈은 결코 실현되거나 완성되지 못한 채 꿈으로만 존재한다. 꿈은 가닿을 수 없어야만 한다. 꿈이 성취되는 순간, 꿈을 향해 달리도록 만든 동력은 일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경쾌한 합창 소리를 통해 강제된 꿈의 연쇄를 끊어내려는 시도를 펼쳐 보인다. 이는 부산비엔날레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들’의 공통된 목적이자 효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현대미술관 복도 한가운데 ‘민중가요 저장소’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역사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드높이며 불협하는 합창을 불렀던 존재가 바로 민중인 까닭이다. 우리 현대사는 모두에게 똑같은 교복을 입힐 수는 있을지언정,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서로 다른 소리를 단일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1979년 10월 16일 아침, 부산대학교에 모인 수백수천의 청년들은 불의한 독재에 항거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통일의 노래’와 ‘애국가’ ‘선구자’ 등을 힘차게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함성과 구호, 노랫소리가 도심을 가득 메웠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소리는 순식간에 증폭되었으며, 부산 전역을 넘어 마산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울림은 강력했고, 뜨거웠으며, 거침없었다. 부마민주항쟁 47주년을 앞둔 지금,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불협하는 합창이 이루는 연대와 저항의 힘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김필남의 영화세상] 내비게이션이 모르는 길
경력은 쌓일수록 단단해진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경력이 통째로 무효가 되는 자리가 있다. 인턴은 흔히 사회초년생의 이름표다. 그런데 노년에게 일자리를 권하는 나라는 그 앞에 ‘실버’를 붙여, 지금껏 쌓아온 커리어를 지워버린다. 실버 인턴. 조직에서 가장 낮은 칸. 김도영 감독의 ‘인턴’은 서른일곱 해를 일한 사람을 그 칸으로 돌려보내며 시작한다. 아내를 떠나 보내고 딸마저 먼 곳에 살고 있는 ‘기호’(최민식 분)에게 실버 인턴 자리는 소일거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마지막 카드에 가깝다. 그가 지원한 곳은 창업 3년 만에 매출 100억을 이룬 패션 회사이다. 다시 시작하는 기호는 열정이 넘치지만 가장 어린 직원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서, 평생 옳다고 믿어온 자신의 방식이 그저 낡은 것임을 매일 확인할 뿐이다. 이곳에서 기호의 37년 경력은 힘이 없다. 그런데 영화가 기호를 보여줄 땐 은근한 고집이 담겨있다. 그는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길 대신 자신이 아는 길로 차를 돌린다. 사소해 보이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태도를 압축한다. 경험이란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는 정보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 다만 그 감각이 정말로 이 회사에, 이 시대에 여전히 쓸모가 있는지는 영화도 쉽게 답하지 않는다. 이 물음이 2015년에 개봉한 원작 ‘인턴’과 이 영화를 가른다. 원작의 ‘벤’이 이미 완성된 어른으로 회사에 들어섰다면, 기호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으로 들어선다. 달라진 것은 기호가 들어선 자리만이 아니다. 젊은 CEO ‘선우’(한소희 분)의 사정도 바뀌었다. 원작이 여성 대표로서 일과 육아 사이의 고민을 담았다면, 영화는 그 축을 덜어내고 남편의 불륜과 이혼이라는 사적인 파열을 세운다. 일하는 여성이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무게가 결혼 생활이라는 문제로 옮겨간 셈이다. 그 선택이 지금 한국에서 더 절실한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루기에 더 수월한 이야기이기 때문인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이다. 갈등의 무게가 개인의 내면으로 옮겨오자 선우의 불안도 안으로 향한다. 업계의 다크호스로 불리면서도 선우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한다. 성공이 불안을 지워주지 않는다는 것, 성취가 클수록 부족하다는 감각만 더 또렷해진다. 이때 기호는 불안을 없애 주는 대신 같이 견뎌준다.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곁을 지키는 태도가 오히려 신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지혜로운 어른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줄 누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기호와 선우의 작은 술자리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선우에게 기호는 네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답한다. 특별할 것 없는 말이지만, 성과와 효율로만 서로를 증명해야 하는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라 무게를 얹는다. 그러나 이 훈훈함은 영화의 약점과 맞닿아 있다. 두 사람을 잇는 신뢰가 따뜻하게 그려질수록, 그 신뢰가 서 있는 바닥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즉 영화가 세대 사이의 온도차를 풀어내는 방식은 경쾌하지만, 정작 ‘실버 인턴’이라는 제도가 품은 불안-나이 든 노동이 얼마나 쉽게 임시적인 것이 되는지, 그 자리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갈등의 재료로 잠깐 스칠 뿐 파고들지 않는다. 기호와 선우의 우정이 훈훈할수록, 우정을 가능하게 한 구조의 불균형은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인턴’이 남기는 건 통쾌한 성장담이나 해답이 아니라, 모든 걸 이룬 뒤에도 다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야 했던 한 사람의 ‘얼굴’이다.
[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몸은 어디까지 예술인가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현존의 미학
여자는 꿀 1㎏과 포도주 1L를 들이켠다. 유리잔을 깨뜨리고 면도날로 자신의 배에 오각별을 새긴다. 상처에 피가 흐른다. 이어 등에 채찍을 휘두르고 얼음으로 만든 십자가 위에 눕는다. 천장의 난방기는 배의 상처를 향해 열을 내뿜고 등은 얼어간다. 몸의 고통은 더해진다. 이 고통은 연기가 아니다. 마침내 위험을 감지한 관객들이 그녀를 얼음 위에서 끌어내면서 퍼포먼스는 끝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1946- )가 1975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선보인 ‘토마스의 입술’이다. 여기에는 그녀가 성장한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도 스며 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오각별과 세르비아 정교회를 연상시키는 십자가가 한 몸 위에서 충돌한다. 꿀과 포도주, 피와 채찍질, 십자가와 상처는 성찬과 순교, 죄와 구원의 이미지를 불러낸다. 몸은 이념과 종교, 개인의 기억이 충돌하는 장소이며, 상처 입은 몸은 정치와 종교가 인간에게 새겨온 폭력과 희생의 역사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상처 입은 몸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이다. 실제 작가가 피를 흘리고 위험해지자 관객들이 개입한다. 이 순간 작품과 현실, 보는 자와 행위를 하는 자의 경계가 무너진다. 에리카 피셔-리히테가 퍼포먼스에서 강조한 ‘수행적 전환’도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은 미리 완성된 물건이 아니라 행위자와 관객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의 ‘더 아티스트 이즈 프레즌트’(The Artist Is Present)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전시장 한가운데 앉아 맞은편 관객과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관객은 원하는 만큼 그 자리에 머물 수 있었다. 이 퍼포먼스에서 남는 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 앞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곧 ‘지금 여기’의 현존이다. 21세기의 아브라모비치는 몸을 타자와 관계를 맺는 매개로 바꾸었다. 퍼포먼스의 중심이 고통받는 몸에서 서로 바라보며 함께 존재하는 관계로 이동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반세기 전 출발한 아브라모비치가 다시 우리의 동시대인이 된다. 영상과 이미지가 무한히 복제되고, 인공지능이 가상의 얼굴과 몸까지 만들어내는 시대에 아브라모비치는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매체를 되돌려놓는다. 살아 있는 몸, 그리고 다른 몸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예술은 더 이상 대상만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의 문제가 된다. 몸은 어디까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여기서 작가는 관객에게 되묻는다. 한 인간의 몸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놓일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가? 관객이 더 이상 바라보기만 할 수 없는 순간, 몸은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예술은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시간은 거꾸로 간다] AI 시대와 노인 난민
“AI가 모든 인간을 죽일 수도 있다.” 미국 AI 회사 앤트로픽의 전현직 연구원들이 최근 경고한 말이다. 인류가 수십 년째 풀지 못한 밀레니엄 수학 난제를 AI가 푼 이틀 뒤에 나온 말이라 더 충격적이다. 급기야 AI의 발전 속도가 인간의 이해 속도보다 빠르고 개발자의 통제 능력을 넘어서는 불안한 사태를 우려해 앤트로픽·오픈AI·스페이스XAI·구글 딥마인드 4개사 수장들은 한결같이 개발 속도를 늦추도록 주장하고 나섰다. AI는 돌봄과 복지에 기여도 하지만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재난적 일상으로 내몰 수도 있다. AI 시대가 되면서 노인은 점차 보호받지 못하고 생활할 곳을 잃어버리는 일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병원 예약을 앱으로 해야 하고, 은행 업무는 모바일로 하며, 정부 서비스도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음식점은 키오스크를 사용하며, 교통도 모바일 앱으로 예약하고 일자리도 AI 활용 능력을 요구한다면 어느 순간 노인은 자신이 살아온 사회에서 오히려 고립된 이방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디지털 국경을 넘지 못해 갈 곳도 없어지고 로그인을 할 수 없어 시스템에 접근조차 되지 않아 알고리즘의 감옥에 갇히며 ‘난민’의 처지가 되는 것이다. 거대한 1000만 시니어 시대에 노인이 난민이 되는 첫 번째 경우는 디지털 영역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동하면서 은행 창구, 병원 진료 예약 및 수납, 공공서비스, 식당, 택시 및 철도 이용에서 노인은 커다란 장벽을 만난다. 필수 생활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시장의 난민이다. 단순 사무, 계산, 고객 응대, 자료정리, 운송, 금융상담, 행정업무 등이 AI와 자동화의 영향을 받아 소중한 일자리를 잃게 되고, 새로운 기술과 직업교육이 고령자에게 원활하지 못해 일자리 전환의 기회도 상실하는 위험에 처해진다. 세 번째는 돌봄의 난민이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로 내달리는 우리나라에서 건강관리, 낙상 감지, 복약 관리, 스마트홈, 돌봄, 상담, 원격의료 등을 점차 AI와 로봇이 대체하면서 낯선 돌봄 환경에 놓이는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네 번째는 관계의 난민이다. AI가 대화 상대가 되면서 상호적 인간관계와 소속감,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외로움과 소외만 키우게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AI가 만든 ‘보이지 않는 노인’이다. 대개 노인의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AI가 의료, 금융, 복지, 채용, 보험 등을 판단하는데 노인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알고리즘 연령차별을 발생시킬 수 있다. 즉, 데이터 난민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는 사람이 필요 없는 사회가 아니다. 오히려 AI 덕분에 사람이 더 존중받고 사람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노인이 난민이 되지 않는 AI 시대, 그것이 진정한 초고령사회 기술혁신의 방향이다.
[강윤경 칼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던 초심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통합은 유능함의 지표이고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며 “국민의 삶을 바꿀 실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 세력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편 가르고 혐오를 심는 것”이라고도 했다. 2025년 6월 4일 대통령 이재명의 취임 일성은 ‘모두의 대통령’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광장이 둘로 갈라진 상황에서 팬덤 정치에 특화된 특정 진영의 수장 이미지가 강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통합’보다 ‘내란 청산’을 앞세울 경우 국론 분열이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정쟁으로 날을 새기에는 국가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안팎의 위기 상황 또한 녹록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인사로 통합을 실천했다. 윤석열 정부 인사였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이례적으로 유임시켰다. 민주노총 출신 노동부 장관을 앉히면서도 대기업 출신 장관을 등용해 균형을 맞추고 외교 라인에도 ‘자주파’와 ‘동맹파’를 공존시켰다. 그러면서도 국민 눈높이나 야당, 우리 지지층 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측면이 있다며 몸을 낮췄다. 야당 대표와 식사도 하고 국회 시정연설에 꼬박꼬박 참석해 야당 의원들에게도 먼저 악수를 청했다. 취임 1년의 국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배경이다. 60%대의 높은 지지율이라는 숫자로도 뒷받침됐다. 그러던 지지율이 3개월 만에 반 토막 났다. 여당 내부에서도 지지율 하락의 속도와 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지목하는 원인은 우선 부동산과 주식이었다.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고 7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는데 무주택자만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유능함’의 상징이던 주식시장도 하락 반전하며 지지율 추락과 궤를 같이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자신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는데 좋아할 국민은 없다. 공소 취소와 연임 개헌,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지지율 하락이라는 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래서 해법 찾기도 어렵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숙고할 수밖에 없다. 집권 초 안정적이던 국정이 흔들린다면 그 초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의 마음까지 얻은 그 초심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신뢰 추락의 트리거가 된 게 ‘공소 취소’가 아니었나 싶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4월 더불어민주당 의원 31명 명의로 이른바 조작기소 특검법이 발의됐다. 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좋게 이야기해서 자신감, 달리 말하면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진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사익을 쫓는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불신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불신은 연임 개헌 의혹으로 확대되며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 결과는 ‘모두의 대통령’은커녕 진영 내에서조차 ‘반쪽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비극이었다. 지지율 반등을 꾀하며 단행한 집권 2년 차 개각이 인사 참사로 귀결되고 있는 것도 ‘사익을 쫓는 대통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공소 취소 모임 대표를 법무부 수장으로 내세운 것 자체가 그 프레임을 단단하게 만든 꼴이다. 대법관 제청과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심각한 신뢰의 위기다. 이 대통령은 위기 돌파를 위해 90분간 굳은 표정으로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며 지지율 하락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다시 몸을 낮췄다. 연임 생각은 없다며 선을 그었고 공소 취소 논란에 대해서도 특검의 권한 중 기존 기소 사건에 대한 처분을 삭제하고 진상 규명에만 집중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국민만 믿고 국정에 임하겠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소 취소와 관련해서는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작 필요한 건 퇴임 후 재판받을 각오였을 텐데 말이다. 결국,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수용 여부는 ‘언제나 옳다’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추석 ‘차례상 민심’의 화두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 됐든 추석 연휴가 대통령의 신뢰와 국정 동력 회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통령의 실패는 개인 이재명의 실패가 아니라 국민의 실패이고 그 고통 또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냥 지켜만 보기에는 국민이 그에게 맡겨 놓은 시간이 아직은 너무 많이 남았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추석에 더 몰릴라 ‘부캉이’ 인파 비상
기본설계 통과 가덕신공항, 공사비 해법은 언제
바닷가 드론쇼·강변 나이트마켓… ‘한가위 夜행’ 어때요?
관할 다툼 정리할 기구 없이 중수청부터 ‘개문발차’ [새 형사사법체계 대혼란]
이 대통령-트럼프 ‘뉴욕 정상회담’ 성사… 북미 대화·전작권 전환 등 논의
대통령·여야 당 지지도·지역 홀대론·가덕신공항…‘추석 밥상머리 민심’ PK 핵심 이슈
[외면 받는 부산국제수산엑스포] “정부·지자체가 지원한다니 마지못해 참가했을 뿐”
“거점 국립대 중심 ‘인재 양성 허브’로 지역 산업 연결을”
한가위 금메달 사냥… 체조로 시작해 야구가 ‘금빛 피날레’[여기는 나고야]
부울경 보름달 못 본다… 추석 연휴 흐린 날씨 큰 일교차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