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4 수요일
[사설] 한진칼 지분 경쟁, 산은 '통합 LCC 허브 부산'에 힘 실어야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을 둘러싼 지분 경쟁이 격화하면서 산업은행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호반그룹은 한진칼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2대 주주에 올라선 뒤 최대 주주 지위를 넘보고 있다. 호반 측이 기업결합을 신고하자 한진 측은 추가 매입 계획으로 맞서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우호 지분이라는 변수 때문에 경영권 향방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산은이 보유한 10.58%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산은은 약속 불이행과 책임 회피 논란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항공산업 재편을 이유로 한진칼에 8000억 원을 투입한 결과가 지역 LCC 공중분해와 대형 국적사 몸집 불리기에 그쳤다는 비판을 되새겨야 한다. 산은은 ‘1국가 1국적사’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필요한 유상증자, 사채 인수에 참여했다. 또 두 항공사의 LCC 계열사 3사를 합쳐 지방에 제2 허브를 구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문제는 서울에 본사를 둔 진에어 중심으로 LCC 통합이 이뤄지면서 에어부산이 사라질 처지라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인기 단거리 노선 확대와 지역 영업·운영 기능 분담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부산 본사와 노선·투자 결정권을 갖춘 실질적인 허브와는 거리가 멀다. 이대로라면 가덕신공항은 거점 항공사도 없이 개장해야 할 판이다. 산은 주도의 항공산업 재편이 수도권 집중을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산은은 국정감사에서 “본사 소재지는 기업 자율”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공분을 샀다.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 업계를 재편해 놓고 가덕신공항의 활성화에 필요한 거점 항공사 존치 요구에는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는 이율배반적이다. 산은은 한진칼 경영권 경쟁 국면에서 정책 금융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특정 대주주에 편파적이거나, 반대로 팔짱을 낀 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공공 재원으로 확보한 지분인 만큼 항공산업의 경쟁력과 지역 균형발전을 함께 뒷받침하는 것이 산은의 책무다. 본사와 경영·노선 기획, 항공기 배치·정비 등 핵심 기능을 부산에 집적하는 방안을 공식 의제로 올려 공개 검증을 주도해야 한다. 통합 LCC 부산 허브는 항공편 몇 편을 더 배정받는 문제가 아니다. 남부권의 항공 수요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선을 개척하고 가덕신공항을 성장시킬 항공산업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본사와 의사결정 기능이 있어야 지역의 관광·물류·기업 수요를 장기적인 투자 전략에 반영할 수 있다. 정부의 항공산업 재편이 수도권 집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산은은 한진칼 지배구조 경쟁 국면에서 통합 LCC 부산 허브 구축에 실질적인 힘을 실어야 한다. 산은이 지켜야 할 원칙은 분명하다. 어느 대주주의 지분이 늘어나는지가 아니라 국민의 돈으로 추진한 항공산업 재편이 국가와 지역에 무엇을 남기는지다.
[사설] 수출 1조 달러 시대라는데 지역 기업은 환율 역풍에 고통
지난 7월 초만 해도 달러당 1600원을 넘보던 원달러 환율이 갑작스런 하락 전환 후 두 달 넘게 1300원대에 머물며 지역 수출 제조업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경제 전체엔 원화 강세가 나쁜 것은 아니라 해도 수출 생태계의 기초 체력이라 할 수 있는 제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면 그냥 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특히 조선과 조선기자재, 철강, 수산업 같은 부산·울산·경남 주력 수출 산업에 직격타가 되고 있다. 같은 물량을 수출해 달러를 벌어도 원화 매출이나 이익이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상반기 고환율 효과도 하반기에 대부분 상쇄된 분위기다. HD한국조선해양이나 한화오션 같은 대기업도 영업이익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수출 제조업에 가해지는 환율 압박은 기록적인 수출 호조에 가려져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대한민국 누적 수출액은 9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11월에는 1조 달러 돌파도 예고됐다. 수출 1조 달러는 세계적으로도 미국 중국 독일만 일군 대기록으로 축하할 일이다. 반면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수출 실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반도체가 벌어들인 달러가 시장에 풀리며 환율 하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 수출 제조 기업도 수출은 늘었다. 부산 기업 수출 규모도 올해 2월부터 7개월 연속 증가세다. 하지만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고, 중소·하청기업들이 먼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개별 기업 사정은 더 딱하다. 부산의 한 철강 기업은 원화 강세 여파로 제품 가격이 저절로 올라 수출 비중을 늘리던 미국 시장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환율에 더해 수출 환경마저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이던 지역의 플랜트·조선 기자재 기업은 환율 하락에 철강 관세, 해상 운임 상승까지 겹쳐 수익성이 뚝 떨어졌다. 문제는 수출 호조를 발판 삼아 꾀해야 할 기업 성장 기회가 날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에 환율이 급변한 탓에 내년 사업 계획이나 투자 전략을 세우기가 난감해졌다. 미국 금리, 엔화, 지정학적 위험 탓에 향후 환율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도 쉽지 않아 기업들 고민을 키우고 있다. 거시경제적 요인인 환율은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이 어려운 만큼 정부나 금융 당국이 서둘러 나서야 한다. 대기업들도 대응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판이니 자금 여력이나 전담 인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하청기업은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환율 리스크가 계속되면 가격 경쟁력이나 납품단가 등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우선, 외환 당국이 과감한 조치로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여기에 수익성 악화를 겪는 수출 기업에 환변동보험 지원 확대, 긴급 경영자금 공급 등 직접 지원이 시급하다. 사상 최대 수출 와중에 진행되는 환율 변동은 수출 생태계 전체와 얽혀 있는 문제인 만큼 당국과 기업 모두 비상한 자세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사설] 공간과 산업, 미래를 연결하는 해양의 잠재력 주목해야
올해는 해양 접근권과 관련한 갈등이 유난히 크게 불거졌던 해다. 미국과 이란 사이 전쟁으로 빚어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힐 터이다. 해양 접근권 갈등의 반대편에는 미국을 필두로 한 조선 산업 부활과 해양 패권 회복의 몸부림도 두드러졌다. 그 사이 어딘가에는 부산 출발 북극항로로 상징되는 새로운 공간의 모색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 움직임 한가운데에는 해양이 있고 결국 이 같은 시도들은 해양을 어떻게 이을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해양포럼(WOF)이 ‘해양, 잇다’를 주제로 삼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이번 WOF의 ‘해양, 잇다’라는 주제는 바다를 경쟁의 장이 아니라 연결 플랫폼으로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는 공간적 연결을 필두로 산업과 기술, 지역과 세계,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간적인 연결은 북극항로가 상징적 존재로서 부각된다. WOF은 북극항로만으로 하나의 세션을 구성해 시범운항의 성과와 경제성 분석, 전망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세션은 다시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운항 기술의 변화와 친환경 에너지 접목 가능성 등을 살피며 해양 산업과 기술의 연결성 강조로 발전한다. 마지막으로는 해양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등의 가치를 담은 부산 선언 발표도 예정돼 있다. 200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WOF은 올해 20회째를 맞는 부산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올해 행사는 지난해 말 해수부의 부산 이전 이후 부산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 해양포럼으로서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이번 포럼은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의 위상에 걸맞은 인사이트를 선보이는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때마침 지난 5월엔 WOF이 유네스코 정부간해양학위원회가 주도하는 ‘유엔 해양 과학 10년’의 공식 프로젝트로 승인되는 쾌거도 있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또 하나의 국제행사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유엔 체계의 해양과학과 지속가능성 의제에 직접 연결된 글로벌 협력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다. WOF이 제시한 주제는 단순히 바다를 잇는다는 의미를 넘어 해양에 대한 부산의 대응 방식을 제시하려는 데 있다 할 것이다. 해양을 둘러싸고 벌어져 온 그동안의 움직임은 항로와 기술, 에너지 등의 지배를 둘러싼 경쟁이었다. 이번 WOF은 부산이 이런 경쟁에 편승하는 도시가 아니라 연결성을 서비스하고 협력을 주도하는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 선언은 단발성 학술회의를 넘어 진정한 글로벌 해양협력 플랫폼 구축 가능성을 만방에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산업과 미래까지 연결할 수 있는 해양의 잠재력은 해양수도 부산 현실화의 당위성을 웅변한다. 남은 숙제는 그에 걸맞은 정책과 투자다.
비장소와 무인숍
1992년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꽤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일상적으로 이용하던 공간의 인문학적 의미를 풀어낸 부분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시작되며 타인과의 관계 등이 무의미해지는 장소가 늘고 있다는 게 마르크 오제의 설명이었다.그가 예시로 든 전통적인 장소는 고향 집, 마을광장, 전통시장, 교회 등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 있고,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며, 개인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곳이다.반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잠시 거쳐 가는 공간이 늘고 있다. 공항, 고속도로, 각종 터미널, 대형마트, 극장 등은 현대인에게 스쳐 가는 장소다. 타인과의 관계는 최소화하면서 효율성 위주로 짜인 공간이다. 마르크 오제는 이런 곳을 ‘비장소’라고 분류했다.비장소 개념이 등장하자 타인과의 소통, 공동체 소속감 등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판도 있었다. 너무 이분법적인 접근이라는 거다. 오히려 비장소가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해방감을 준다는 긍정론도 나왔다.지금은 비장소가 너무 일상적인 공간이 돼, 30여 년 전 비장소 개념이 논란이 됐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마을광장, 전통시장 등 전통적인 장소가 특별한 곳이 됐고 일상은 스쳐가는 공간으로 가득하다. 마르크 오제의 진단과 비슷한 세상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더 고도화됐고, 전통적인 타인과의 관계는 옅어졌고, 세상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선호한다. 다만 사람들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니, 여전히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비장소를 넘어선 공간도 늘고 있다. 무인숍이다. 2010년대 중반 코인 빨래방이 많이 늘더니 인형뽑기방, 코인노래방,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 무인 커피숍 등이 크게 늘었다. 키오스크 등의 기술력 향상과 인건비 절약 등의 경제적 요인이 결합돼, 대인 접촉 자체가 필요 없는 아주 효율적인 공간이다.최근 부산 광안리 등 주요 관광지에 무인 오락실 등이 급증하고 있다. 기존 매장이 버티지 못한 곳을 운영비가 저렴한 무인숍이 차지하는 형태이다. 관광지로서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점포이며, 형태도 모두 비슷비슷하다. 마르크 오제가 관광지의 천편일률적인 무인숍 거리를 보았다면 분명 비장소만큼이나 흥미로운 이론을 만들었을 것 같다.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김영한
[강윤경 칼럼] 좋은 일자리가 해양수도권의 미래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부산을 떠난 건 지역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부산 유일의 대기업 계열사로 시가총액에서 지역 1위 기업이었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선박 AS와 보증 서비스 부분 등을 분리해 현대글로벌서비스라는 독립 법인을 설립하고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둥지를 튼 게 2016년 11월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삼성자동차 이후 첫 대기업 유치 사례로 부산이 들썩였다. 법인 신설 당시 2000억 원 수준이던 연 매출은 선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2021년 1조 원을 돌파했다. 2023년 사명을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바꾸고 2024년 5월 코스피에 상장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현대마린솔루션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대신 떠나는 길을 택했다. 2025년 3월 공시를 통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모기업 HD현대 글로벌리서치센터(GRC)로의 본사 이전 사실을 공식화했다. 본사를 옮긴 후 코스피200 기업에 편입하고 시가총액 8조 원을 돌파했다. 그렇게 부산은 배를 짓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 회사, 연구개발과 글로벌 마케팅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알짜 해양 기업을 잃었다. 대기업 유치는커녕 있는 기업 하나 지키지 못한 부산시의 행정 실패는 차치하고라도 말로만 해양수도인 지역의 초라한 민낯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산학연 협력으로 지역혁신을 이루겠다며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해양 혁신클러스터까지 만들었는데 정작 해양 대기업은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며 서울로 떠나는 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지역을 등진다는 비판에 이기동 대표는 “나도 부산대 출신이지만 지역에서는 고급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현대마린솔루션의 수도권행은 그렇게 판교가 청년들의 취업남방한계선이라는 씁쓸한 현실만 각인시킨 꼴이 됐다. 스타트업이라고 현실이 다르지 않다. 항공우주 유망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2019년 서울에서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 영도에 자리 잡았다. 부산시가 지자체 최초 초소형 해양관측 위성 ‘부산샛’ 발사를 계기로 유치한 기업이었다. 지역 이전 당시 7억 원이던 매출액은 2024년 4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Ⅱ’에 나라스페이스가 만든 위성이 탑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벤처투자가 쏟아지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2025년 7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갔다. 80명의 직원도 모두 떠났다. 부산시가 부산기술창업투자원까지 설립하고 창업도시를 외쳤지만 정작 유망 스타트업은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런 씁쓸한 현실에서 대형 조선사들이 부산에 R&D센터를 설립하고 확장한다는 건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품게 하는 소식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136억 원을 투자해 부산진구 부전동에 2700평 규모의 엔지니어링센터를 추가로 조성하고 2028년까지 상선·해양플랜트 분야 설계 및 연구개발 전문 인력을 채용키로 했다. 앞서 삼성중공업도 86억 원을 투자해 기존 남구 문현금융단지 내 R&D센터를 1700평 규모로 확장해 새로운 통합 설계 거점을 조성하고 2028년까지 해양 설계 및 연구개발 분야 우수 인력을 대규모로 고용할 계획이다. 국내 대형 조선소가 경남과 울산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산 현장은 물론이고 R&D와 기획, 영업, 금융 등 산업생태계가 부울경 경제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래야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해양수도권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부산 R&D센터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추적 R&D 기능과 전문 연구 인력은 판교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한 후 HMM 등 해운 대기업 이전이 잇따르면서 부산의 기업 판도에도 긍정적 변화가 생기는 것도 지역이 바랐던 해수부 이전 효과다. 3일 부산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매출액 기준 전국 100대 기업에 부산 기업 HMM이 60위로 이름을 올렸고 1000대 기업에 포함된 부산 기업도 31곳으로 늘었으며 이들 기업의 총 매출액 합계도 처음으로 50조 원을 돌파했다. 부산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전재수 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해양수도 부산 세일즈단’ 발대식을 갖고 기업 유치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선급(KR)은 연구시설인 군산TCC(그린 기자재 시험·인증센터) 부산 이전 의사를 밝혔다. 이런 게 해양수도권 조성에 필요한 변화다. 전재수 시장은 불법이 아니라면 기업 유치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5극 3특이니 메가 특구니 정책들을 갖다 붙여 본들, 결국 해양수도권의 미래는 좋은 일자리로 결판난다.
[송하주의 AI 톡] 경력 사다리 첫 칸이 사라지면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는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지난 여름방학부터 4학년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면접이 어땠느냐고 물으면 예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돌아온다. 신입사원에게 묻는 것인지 경력사원에게 묻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대규모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수많은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같은 질문, 그리고 IT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중 마케팅을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보라는 질문도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실무 경험이 없다면 답하기 어렵다. 최근 알고 지내는 회사의 대표들과 나눈 대화에서 이런 변화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입 개발자를 더 뽑기보다 기존 직원에게 AI 서비스 구독을 지원하고 할당하는 업무량을 늘리는 편을 택한다는 것이다. 신입이 맡던 자료 조사, 보고서 작성, 단순한 코딩을 경력자가 AI로 처리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과 교육에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첫 일터로 들어가는 문이 좁아지는 일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부산에서는 그 무게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러한 현상은 컴퓨터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수습기관을 찾지 못해 정식 회계사 등록에 필요한 실무경력을 쌓지 못하는 청년들이 사회문제가 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수습기관 확대와 수습처 배정 대책까지 마련했다. 회계업계의 불황과 합격자 수급 불균형 등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AI가 장부 대조와 자료 정리 같은 초급 업무를 대신하는 변화 역시 신규 인력 수요를 줄일 수 있다. 법률, 금융, 사무직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으리라는 전망은 오래됐다. 그러나 지금 관찰되는 모습은 기존 직원을 한꺼번에 내보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경력자는 AI를 활용해 더 많은 일을 맡고,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인다. 특히 기존 근로자의 퇴직보다 청년 신규 채용 감소가 두드러졌다. 물론 이를 모두 AI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런데 청년 실업보다 더 멀리 내다봐야 할 문제가 있다. 신입을 뽑지 않으면 초급 경력자를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은 프로그래밍 언어와 회계 원칙, 법률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고객의 모호한 요구를 해석하고, 예기치 못한 오류에 대응하고, 숙련자의 판단을 곁에서 배우는 능력은 실제 업무를 통해 다듬어진다. 개발자가 작은 버그를 잡으며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듯, 회계사도 장부와 증빙을 대조하며 기업의 거래와 위험을 읽는 안목을 쌓는다. 단순하고 사소해 보이던 초급 업무가 사실은 미래 전문가를 만드는 훈련 과정인 것이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기업은 신입 지원자에게 숙련자의 판단력을 요구하면서 정작 그 판단력을 키울 자리는 줄인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하면 10년 뒤 기업의 운영을 책임질 전문가는 어디에서 나올까. 경험을 쌓을 첫 일자리가 사라지는데 ‘경력 있는 신입’만 찾는다면 결국 산업 전체가 인력 양성의 빈틈을 떠안게 된다. 사다리의 첫 칸을 치워 놓고 왜 위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이 없느냐고 묻는 셈이다. 해법은 ‘AI 퇴출’이 아니다. 기업은 신입사원을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미래의 숙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투자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AI가 생성한 결과를 검증하고, 실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선배들의 경험과 판단을 배우는 방향으로 신입사원의 업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대학 역시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활용하는 학생이 아니라, 그 결과의 타당성을 판단하고 오류를 찾아 설명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현장실습과 인턴십, 산학연계 교육 등 대학생들이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부산 지역의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기업들이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실습생 지도와 교육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AI 시대의 전문가는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며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을 맡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량은 지식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따라서 AI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다음 세대의 전문가를 키워 낼 기회마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진다면, 미래의 숙련된 전문가 또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데스크 칼럼] 양산의 계란, 축제가 되다
언제부턴가 TV를 켜면 셰프들이 앞다퉈 등장한다. 낯선 식재료는 물론 집 안 냉장고에 있는 평범한 재료로 요리를 만들고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리하는 모습 자체가 볼거리가 되고, 셰프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처음엔 1~2년이면 사라질 유행인 줄 알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음식은 허기를 채우는 수단을 넘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방송에서 소개된 식당을 찾아가고 요리법을 따라 하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유명인들이 SNS를 통해 음식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요리도 누구나 배우고 즐기는 문화가 됐다. 이런 변화는 지역 축제의 모습도 바꿨다. 특산물 전시·판매에 그쳤던 행사들이 먹고, 체험하고, 즐기는 미식 축제로 진화하고 있다. 전주비빔밥축제와 광주김치축제가 지역 전통 음식과 식문화를 알린다면, 김천김밥축제와 구미라면축제는 평범한 먹거리도 관광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축제의 경쟁력은 음식에 지역의 이야기를 입히고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기획력에 달린 것이다. 경남 양산에서도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축제가 있다. 지난해 처음 열린 ‘에그야 페스타’다. 양산의 특산물인 계란을 주제로 한 이 축제에는 첫해부터 5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 평범한 식재료를 축제 중심에 세워 호응을 끌어낸 것이다. 양산의 먹거리도 기획력에 따라 사람을 불러 모으는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오는 7~8일 열리는 올해 축제는 ‘가족’과 ‘아날로그 감성’을 더했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맛보고 사진을 찍으며 잔디밭에서 게임과 체험을 즐기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이 함께 추억을 만드는 축제로 꾸민 것이다.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에 출연한 ‘제일번’ 곽동훈 셰프를 푸드 디렉터로 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계란 요리를 선보인다. ‘중식 마녀’ 이문정과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 등 유명 셰프도 참여한다. 우리 식탁에서 흔히 접하는 계란에 세계 여러 나라의 조리법과 셰프들의 전문성을 더해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계란은 아침 식사부터 간식, 각종 요리와 디저트까지 쓰임새도 다양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친숙한 식재료이지만, 너무 흔하다는 이유로 관광 자원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에그야 페스타는 이 평범한 식재료에 요리와 체험, 볼거리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지난해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계란말이 퍼포먼스가 올해는 선거법 관련 문제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지 못하게 됐다.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계란이라는 축제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고 방문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다른 지역에서는 초대형 회비빔밥이나 김밥을 만드는 장면이 행사나 축제의 대표적인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모습은 축제의 흥겨움을 더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되면서 홍보 효과도 거둔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법으로 축제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다만 올해는 지방선거도 이미 마무리된 만큼, 법의 취지를 존중하면서도 지역 축제의 참신한 기획이 위축되지 않도록 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적용 기준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축제의 성과가 방문객 숫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의 참여를 확대하고 방문객이 인근 식당과 상점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유명 셰프와 지역 요리사가 함께 양산만의 계란 요리를 개발하고 SNS 등을 통해 꾸준히 알린다면 축제가 끝난 뒤에도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 지역 농업과 관광, 상권을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산은 통도사 등 역사·문화 자원과 낙동강변 황산공원, 사통팔달의 교통망 등 관광 기반을 잘 갖추고 있다. 여기에 미식까지 더하면 관광객이 머무를 이유도 늘어난다. 음식 축제를 단순한 연례행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지역 이름을 알리고 소비를 창출하는 관광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밥과 라면, 국수가 지역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양산의 계란이라고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음식이 문화가 되고 축제가 되는 시대다. 에그야 페스타는 지난해 미식 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올해는 콘텐츠를 차별화하고 지역 경제와 연결해 양산을 대표하는 미식 브랜드로 키워야 한다. 평범한 계란 한 알이 양산을 알리는 특별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노트북 단상] 부산의 얼굴이 오락실이어야 할까?
“부산을 처음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보여줄 모습이 바다 다음으로 오락실, 가챠숍이라면 너무 씁쓸하지 않을까요?” 광안리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만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지난달 〈부산일보〉 취재진이 직접 광안리 해변 1.4km 구간의 1층 상가 200여 곳을 살펴보니 오락실과 인형뽑기·가챠 전문점은 21곳이었다. 카페 17곳보다 많았다. 가챠는 돈을 넣고 기계를 돌리면 무작위로 장난감이 담긴 캡슐이 나오는 기계다. 해운대와 서면 등 부산 주요 번화가에서도 비슷한 업종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부산 관광의 중심은 과거 태종대와 해운대를 거쳐 최근 광안리로까지 확장됐다. 그러나 관광지는 바뀌어도 거리를 채우는 가게들은 오히려 비슷해지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는 업종에 자본이 몰리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유행이 지나간 뒤다. 기자가 사는 동네에 3~4곳이나 있던 탕후루 가게는 모두 사라졌다. 없어서 못 팔던 ‘두바이 쫀득 쿠키’의 열기도 어느새 식었다. 오락실의 인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유행이 지나도 쉽게 내려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임대료다. 광안리에서 만난 한 상인은 “재료비와 인건비 등이 많이 드는 식음료 업종 특성상 해변가에서 수천만 원대 임대료를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월세가 5000만 원 안팎인 해변 상가 4곳 가운데 3곳은 대형 오락실이었다. 한 공인중개사는 한 번 올라간 임대료는 건물 가치와 연결돼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유행 업종이 떠나도 다음 가게는 수천만 원의 월세를 감당해야 한다. 개성 있는 식당이나 카페 대신 또 다른 유행 업종이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다. 유행은 바뀌지만 거리의 모습은 점점 획일화되는 되는 것이다. 걱정은 광안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서울 홍대나 수도권 번화가에서 유행한 매장들이 부산의 대표 관광지까지 똑같이 들어온다면 부산만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광안리에서 만난 한 미국인 관광객은 “10년 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예전에는 전통적인 상점이나 식당이 더 많았다”며 “오락실도 재미있지만 지금은 너무 많다. 현지인과 교류하기보다는 관광객이 돈을 쓰도록 만든 곳처럼 느껴져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 부산 관광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올해 1~9월 부산 방문 외국인 관광객은 약 393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을 불러들인 힘은 어디에 있을까. 바다와 항구, 부산의 역사를 간직한 개성 있는 골목과 음식, 그리고 인정 넘치는 사람들.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의 매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매력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이어지려면 민간의 개성 있는 시도도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새로운 문화행사를 제안할 때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행정 풍토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한 대표는 서울에서는 새로운 기획을 실현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지만, 부산에서는 “하던 거 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행사 하나를 성사시키려 하면 진취적인 주무관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상권이 침체하면 빈 점포가 눈에 띄지만, 호황기에는 무엇이 사라지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10년 뒤에도 광안대교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때도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부산의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kksh@
[중앙로365] AI 금융 시대, 부산의 핵심 인프라는 사이버보안
지난달 말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63억 달러(약 8조 4000억 원) 상당의 자산이 탈취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북한의 소행으로 지목했다. 바이낸스는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해킹됐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다른 곳에서도 침입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돈을 움직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돈을 지키는 장치도 더 정교해져야 한다. 사이버보안은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상품을 고르고 결제하는 ‘AI 에이전트 경제’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구글과 비자도 이를 위한 기술과 결제 체계를 공개했다. AI에 결제까지 맡긴다는 것은 돈을 쓸 권한도 내준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거래처에 물품 대금을 보내는 일을 AI에게 맡겼다고 해보자. ‘입금 계좌가 바뀌었다’는 사칭 메일을 믿은 AI가 송금했다면, 금액과 지급일을 맞췄어도 돈은 사기범에게 간다. 확인되지 않은 메일 한 통으로 회사가 승인한 지급 조건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부산의 기회도 AI 시대의 금융보안에 있다. 금융기관과 자본이 모이려면 안심하고 거래할 기반이 있어야 한다. 사이버보안은 그 신뢰를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다. 문현금융단지의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보안 문제를 부산 기업이 풀어낸다면, 금융서비스의 신뢰와 부산 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 부산이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지 7년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3~2025년 부산 블록체인 특구의 신규 실증 사업은 0건이었다. 이제는 그동안 쌓은 실증 경험을 바탕으로 AI 금융서비스의 사이버보안을 강화할 새 과제를 발굴해야 한다. 사용자가 승인한 내용과 실제 거래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기술부터 시험해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은 그 지시와 승인 기록을 함부로 고치기 어렵게 남겨, 사고의 경위를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런 과제를 정할 때는 금융기관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부터 살펴야 한다. 여러 기관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다른 금융기관에도 판매할 수 있다. 개발 초기부터 금융기관과 기업이 무엇을 고칠지, 효과는 어떻게 평가할지 함께 정해야 한다. 기술을 만든 뒤 고객을 찾기보다 누가 무엇을 위해 사용할지부터 살피자는 것이다. 부산시는 도입 계획이 구체적인 과제부터 지원하고, 필요한 규제 특례는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검증할 때는 실제 이용자의 입장도 살펴야 한다.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정상적인 거래는 불편 없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신속하게 대응해 피해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부산시가 지원하는 금융보안 기술은 전문가의 성능 검증과 금융기관의 현장 평가를 함께 받아야 한다. 이렇게 검증한 AI 금융보안 기술은 금융기관의 구매와 도입으로 이어져야 한다. 실증에 참여한 기업에는 개발과 검증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고, 부산에서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국내외 고객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지원이 시제품 제작에서 끝나면 기업은 기술을 개선하고 인력을 계속 고용할 기반을 갖추기 어렵다. 특구의 성적표에도 실제 도입 실적과 매출, 부산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일자리를 담아야 한다. AI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이를 안전하게 설계하고 운영할 사이버보안 전문인력의 역할도 커진다. 부산이 이 분야를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다. 이를 뒷받침할 연구와 교육의 거점도 생겼다. 지난달 13일 부산국제금융센터에 ‘부산 블록체인·AI 디지털금융 혁신 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부산대 연구 인력이 상주하는 이곳에서는 내년 2월부터 융합보안대학원 석박사 과정도 운영될 예정이다. 부산대의 융합보안 핵심인재 양성사업에는 2031년까지 국비와 시비를 합쳐 60억 5000만 원이 투입된다. 이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부산시·대학·기업·금융기관이 ‘AI 금융서비스의 보안 취약점 점검과 개선’을 공동 과제로 추진하자. 부산시는 실증 비용과 시험 환경을 지원하고, 대학 연구진과 학생은 부산 기업과 함께 해법을 개발한다. 금융기관은 현장에서 효과를 확인하고 도입 여부를 판단한다.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이 부산 기업에서 실무를 배우고 취업할 수 있도록 현장 교육과 채용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금융도시의 신뢰는 위험을 미리 찾아 막고, 사고가 나면 책임 있게 수습하는 데서 나온다. AI가 거래를 대신해도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가 믿고 쓰는 사이버보안 기술을 부산에서 만들어낼 때다. 부산 기업이 그 기술로 성장하고, 부산에서 나고 자라고 배운 청년이 부산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허브라는 부산의 꿈도 그때 시민의 삶을 바꾸는 현실이 될 것이다.
[편집국에서] 병역 특례, 이제는 폐지할 때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일부 구기종목 몇몇 선수들의 병역 특례 관련 발언과 행동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며 우리 사회가 오래 미뤄 온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체육과 문화예술 분야 병역 특례를 폐지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체육 분야 병역 특례는 1973년 도입됐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북한이 첫 금메달을 딴 것이 계기였다. 북한은 사격에서 금 1개를 비롯해 은 1개, 동 3개 등 5개의 메달을 땄다. 반면 한국은 은메달 1개에 그쳤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 심화됐던 당시 국제대회 성과를 위한 당근책으로 병역 특례가 도입된 것이다. 올림픽은커녕 아시안게임 메달조차 귀했던 시절, 우수 선수의 기량을 유지하고 국제무대에서의 성취로 국가의 위상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국제적 성과를 인정하고 창작 활동을 장려한다는 명분으로 특례가 운영돼 왔다. 현행 제도에서 체육인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에 오르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예술 분야는 병무청이 지정한 국제 음악·무용경연대회 입상자와 일부 국내 경연대회 우승자,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 이수자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당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국 스포츠의 위상은 크게 높아져 다양한 종목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뛰고 있다. 반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크게 낮아졌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방식은 다양해졌다. 한국 음악과 드라마, 영화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다. 반도체와 휴대폰, 자동차 등 첨단기술 기업 역시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병역 특례가 도입되던 시절의 논리를 지금까지 유지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병역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과되는 공동의 의무다. 물론 건강과 신체 조건, 법률이 정한 사유에 따라 복무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이나 체육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는 이유로 병역 의무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정 분야의 성취를 병역 특례의 근거로 삼으려면 그만큼 분명하고 보편적인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례가 방탄소년단(BTS)이다.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K팝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린 BTS는 한때 병역 특례 논의의 중심에 섰다. 세계적 성과를 고려해 병역 의무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BTS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인 문화예술계 인사가 있었냐는 말이 설득력을 얻어 ‘BTS 병역특례법’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기도 했으나, 형평성 논란 등으로 통과가 무산됐고 결국 7명 멤버 모두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BTS의 사례는 병역 특례를 둘러싼 논쟁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클래식 음악이나 무용 분야의 일부 수상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나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대중예술 분야를 제외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무엇보다 저출생으로 인한 병역 환경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징집 대상자가 충분했던 과거의 제도를 병역 자원이 크게 줄어든 지금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특정 분야의 사람만 병역 부담을 덜 지는 것에 대해 이제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문제가 해결된 이후엔 한 번도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은 추신수 등의 사례에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축구 대표팀 몇몇 선수들의 도 넘은 발언과 행동에 국민들의 공분은 임계점을 넘었다. 이에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는 단순한 기준 조정을 넘어 단계적 축소와 궁극적 폐지를 검토하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국방부는 예술·체육 병역특례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폐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병역 특례 폐지가 선수와 예술인의 노력을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성취에 대한 보상과 병역 의무를 분리하자는 것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에게는 포상금과 연금, 훈련 지원으로 보상할 수 있다. 군 복무가 선수 생애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복무 중 훈련 여건을 개선하고 전역 후 경기 복귀를 지원하는 방안, 군 복무를 더 늦추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 예술인에게도 창작 지원과 국제 활동 지원, 수상 성과에 대한 별도 포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적 성취를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갑작스러운 폐지는 이미 병역 특례를 전제로 진로를 준비해 온 청년들에게 큰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에 몇 년 정도의 유예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강희경 부국장 겸 문화스포츠부장 himang@busan.com
“수출 물들어왔는데…” 환율 역풍에 우는 지역기업
급변하는 글로벌 해양 미래 머리 맞댄다
이 대통령 “지방에 대규모 투자 기업, 설비투자액 최대 50% 지원”
스무 돌 맞은 세계해양포럼, 토론·시민 참여형 업그레이드
광안리해수욕장·이기대·동백섬 3곳서 입체적 불꽃 연출
지방소멸대응기금 연계해서라도 수요부터 살려야 [벼랑 끝 지역 부동산]
“지역서 성장 기회·성과 고르게 누릴 모두의 성장 중요”
‘협치 중단’ 부산시의회, 전재수 시정 첫 행감서 정면충돌 예고
부산교육청 “학교 체육시설 개방 확대”… 문제는 재원·안전
공공재원 들어간 ‘부산 구·군 문화원’ 인사 관리·감독 허술